[AZ가 간다]③'파도와 사투' 생초보 해녀체험…당일 캔 성게알, 강남 백화점 특급배송

신세계百, '해녀의 신세계' 원물 수급 탐방
제주 해녀 성게 채취 현장 동행 체험
2시간 물질→5시간 성게알 분류→협력업체 수매
포장 후 항공 배송→제철 해산물 식품코너 진열
고객 편의·활용도 고려 간편식 메뉴도 개발

편집자주유통가는 배송 전쟁 중이다. 주문한 상품을 수령하기까지 수일이 걸리던 과거와 달리 익일배송을 넘어 주말을 포함한 당일 배송으로 속도를 줄여가고 있다. e커머스와 배달 플랫폼은 물론 백화점과 대형마트, 슈퍼, 편의점 등 오프라인 채널까지 배송 전쟁에 뛰어들었다. 40대 '아재(AZ)' 기자가 직접 체험한 생생한 배송 현장을 전달한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해안에서 해녀들이 성게 채취를 위해 물질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해안마을. 오전 8시가 되자 해녀들이 물질에 나서기 위해 삼삼오오 모였다. 대부분 바다에서만 50년 이상을 보낸 70세 이상 숙련자로 제철인 성게를 채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몸에 꽉 끼는 잠수복을 입고 이들을 따라나섰다. 주황색 부표인 테왁과 해산물을 담는 망사리에 수경과 갈고리, 오리발 등 필요한 장비들이 수북했다.

성게 채취를 위해 물질에 나서는 제주 해녀들.

10여명의 해녀는 별다른 신호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더니 300m가량을 줄지어 헤엄쳐 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성게는 어떻게 따야 하는지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한 채 서둘러 뒤를 쫓았다. 수영 실력이 평균 이상은 된다고 자부했는데도, 오리발을 차고 물장구치는 다리에서는 곧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수경으로 물속을 훑어봤으나 작은 물고기와 해조류, 바위들만 무성할 뿐 성게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파도에 치이고 바위에 디딘 오리발이 연신 미끄러져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20여분을 물속에서 헤매다 보니 멀미가 느껴졌다. 숨을 고르기 위해 갯바위에 걸터앉아 해녀들을 지켜봤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그들의 입에서는 "휘이이~"하는 숨비소리가 들렸다.

캐고 다듬고…성게알 2㎏에 하루가 꼬박

신세계백화점이 지난 2월28일부터 강남점 식품관 내 슈퍼마켓을 '신세계 마켓'으로 새단장하고 해녀들이 당일 채집한 해산물을 유통하는 '해녀의 신세계' 코너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가운데, 원물 채취와 가공, 포장, 배송 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보기 위해 해녀들의 일터를 세 번째 체험 현장으로 정했다.

성게 채취 중인 제주 해녀들.

해녀들은 잠수한 뒤 갈고리로 바위를 뒤집거나 틈새로 손을 뻗어 성게를 찾는다. 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뒤 숨을 들이쉬고 물구나무 자세로 수심 2m가량을 헤집어 가시 돋친 성게를 처음 캐냈다. 해녀들이 몰려있는 스폿 주위를 훑다 보니 성게를 추가로 10개가량 캘 수 있었다. 초보자가 물속에서 헤매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가까이 있던 해녀들이 새끼 돌문어와 굵은 성게 등을 망사리에 넣어줬다.

성게 채취는 2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뭍으로 올라오는 해녀들의 망사리에는 성게와 오분자기 등 해산물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망사리 무게는 상당했다. 성인 남성 둘이 건져 올려도 버거울 정도였다. 칠순이 넘은 해녀들은 자신의 망사리를 둘러메고 굽은 허리로 작업장으로 향했다.

성게 채취를 마치고 작업장으로 향하는 제주 해녀들.

물질을 마치면 곧바로 성게알을 분류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자신이 수확한 성게를 수북이 쌓아두고 칼로 몸통을 가른 뒤 티스푼을 이용해 내장과 불순물을 제거한다. 이 작업에만 4~5시간가량 소요되는데, 해녀들은 미동도 없이 오후 3시까지 노란 성게알을 발라내 바가지에 담았다. 해녀 1명이 당일 손질을 마친 성게알은 2㎏ 남짓이다. 강영남 신세계백화점 신선식품팀 수산물바이어(과장)는 "어촌계와 계약한 자연산 수산물 판매법인에서 이를 수매하는데 ㎏당 14만원 정도에 거래된다"며 "성게알은 수입이 괜찮은 해산물에 속해 수확이 가능한 제철에는 작업장이 분주하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들이 작업장에서 채취한 성게를 손질하고 있다.

작업한 성게알은 탑차로 냉장을 유지하며 만제영어협동조합으로 보낸다. 신세계백화점의 협력사로 제주 내 20개 남짓한 어촌계로부터 해산물을 수매하는 곳이다. 해녀들이 1차로 작업한 성게알은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 직원들이 추가로 다듬어 상품화한다. 거래처가 요청한 용량에 맞춰 상품을 소분하고, 정해진 출하량을 당일 오후 항공편을 통해 육지로 보낸다. 성게알뿐 아니라 뿔소라와 보말, 미역, 톳, 오분자기 등 철에 따라 수확하는 자연산 해산물도 이들 과정을 거쳐 당일 저녁 서울과 대도시 백화점 매장을 찾는 소비자와 만난다.

해녀 판로 확대…간편 조리식으로 활용도↑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부터 해녀들이 당일 채취한 해산물을 식품관을 통해 판매했다. 단순히 신선한 해산물을 유통하는 것을 넘어 제주 해녀들이 고수해온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과 진정성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취지였다. 포부는 야심찼으나 실적은 저조했다. 고객들이 원물을 생소해하고, 조리하는 방법도 익숙지 않아서다. 물질이 날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원물을 일정하게 수급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뿔소라와 보말, 자연산 돌미역 등 제주 해녀들이 당일 채취한 해산물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신세계 마켓에 진열돼 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조리식품이다. 신세계 마켓에 입점한 한식·일식 전문가를 통해 제주 해녀들이 수확한 해산물로 간편 조리식품을 만들기로 했다. 일식 전문가인 류시주 스시도쿠겐 헤드셰프와 한식 요리연구가 김재희 시화당 대표가 강 과장의 요청을 받고 메뉴를 개발했다. 뿔소라비빔밥, 성게알 게살 지라시동, 돌문어 카르파초, 톳나물무침, 뿔소라 오분자기죽 등 식사와 반찬, 안주로 즐길 수 있는 한식·일식 메뉴 약 40종이 탄생했다.

류 헤드셰프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메뉴를 중심으로 일식의 특색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가격도 1만~2만원대로 책정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원물 자체가 워낙 신선하기 때문에 특유의 맛과 향을 부각할 수 있는 메뉴를 우선순위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제주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로 만든 조리식품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신세계마켓 '해녀의 신세계' 코너에 진열돼 있다.

해녀의 신세계라는 정식 브랜드가 된 이들 메뉴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사우스시티, 타임스퀘어점, 푸드마켓 도곡 등 4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본점과 센텀시티, 대구신세계, 광주신세계에서는 원물을 판매한다. 대형 유통 채널에서 제주 해녀들이 채취한 원물과 이를 활용한 메뉴를 직접 판매하는 것은 신세계백화점이 처음이다. 물류비가 많이 들지만 해녀들의 수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도록 마진율을 최소한으로 운영한다고 백화점 측은 설명했다.

해녀의 신세계 매출은 오름세다. 신세계 마켓 개장 이후 이달 22일까지 약 4개월간 8개점 합산으로 매출 신장률 316%를 기록했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목표로 세운 매출과 비교해서도 143% 신장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해녀의 신세계를 운영하면서 물질 후 해산물이 유통되는 과정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졌다"며 "원물을 활용하는 요리법을 소개하고 유명 셰프들과 협업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면서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유통경제부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