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예상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심리 위축 속에 기업들은 관세 부담이 커졌음에도 소비자 가격 인상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PA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2.4% 상승했다. 이는 4월(2.3%)보다 소폭 높은 수치지만 시장 예상치인 2.5%를 하회했다. 전월 대비로는 0.1% 상승에 그쳐, 전망치(0.2%)와 4월 오름폭(0.2%)보다 낮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했다. 이는 4월(2.8%)과 같은 수준이지만 시장 예상치인 2.9%는 하회했다. 전월 대비로는 0.1% 상승해 4월(0.2%) 및 예상치(0.3%) 모두를 밑돌았다. 근원 CPI는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품목별로 보면 에너지와 서비스 가격 하락이 두드러졌다. 에너지는 전월 대비 1% 하락했으며, 특히 휘발유 가격은 2.6% 내려 전년 대비 12% 급락했다. 식품은 0.3% 상승했으나, 이 중 계란 가격은 2.7% 하락했다.
관세 인상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됐던 신차와 중고차 가격은 각각 0.3%, 0.5% 하락했다. 의류 가격도 0.4% 하락하며 상승할 것이란 예상을 비켜 갔다. 지난달 CPI 상승에 주요 영향을 준 주거비는 전월 대비 0.3% 올랐으나, 연간 기준으로는 3.9% 상승해 2021년 말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번 CPI 지표는 관세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발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4월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했고, 이를 전후해 철강·자동차 등 일부 품목별 관세도 발효했다. 하지만 각종 유예 조치와 무역 협상 등의 영향으로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아직 제한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의 알렉산드라 윌슨-엘리존도 멀티에셋 솔루션 글로벌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업들이 기존 재고를 활용하거나 수요 불확실성으로 가격을 천천히 조정하고 있어 관세가 즉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며 "상품 가격이 다소 오를 수 있지만, 서비스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여 물가 상승률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향후 국가별 상호관세 유예 조치가 종료되고, 무역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기업들이 이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반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상보다 낮은 인플레이션 지표로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은 Fed가 올해 0.25%포인트씩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69% 이상 반영하고 있다. 이는 전날 61%에서 상승한 수치다.
국채 금리도 하락세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일 대비 6bp(1bp=0.01%포인트) 하락한 3.94%, 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일 보다 3bp 내린 4.43%에서 거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