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기자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기존의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1.8%인 잠재성장률 또한 예상보다 빨리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가 이렇게 저성장의 함정에 빠지게 된 배경은 단기적으로는 고금리 지속으로 인한 내수 침체와 미국 관세정책에 따른 수출감소에 있지만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산업경쟁력 약화와 제도개혁 지연에 있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정부의 산업정책으로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의 주력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으로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에서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일자리가 감소하고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드론, 인공지능(AI),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 신산업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그동안 정책당국은 산업정책을 등한시하면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노동, 조세, 교육, 연금 등 각종 제도개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기술 진보, 생산성, 출산율 등은 모두 관련 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제도를 잘못 선택하면 경제는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산업구조는 급변하고 있다. 또한 저출생, 고령화로 인구구조도 크게 변하고 있다. 경제환경이 변하면 제도 또한 변화된 환경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제도가 개혁되지 못하면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먼저 신산업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는 19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자동차, 조선 등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면서 성장해 왔고 2000년대에는 IT 산업 육성을 통해 IT 강국으로 변신해 반도체 수출로 성장률을 높였다. 어느 산업이나 이미 발달과 성숙단계에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 없지만 육성단계에서는 정부 지원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정책이 중요하다. 최근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정책당국은 물론 중국 정부 역시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전문인력 유치와 함께 재정 및 조세지원에 올인하고 있다. 정책당국과 국회는 신산업 육성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정부 지원을 늘려서 신산업을 육성시켜야 한다. 신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반도체와 같이 앞으로 20년 동안 한국 경제는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제도를 개혁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자본 시장이 개방된 경제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제도는 저성장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지금과 같이 주식과 기업투자에서 탈 한국 추세를 부추겨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는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를 결정하는 정부와 국회는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요인에 의해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의 제도하에서 혜택을 보던 이익집단의 반발도 극복해야 한다. 역대 정부 모두 노동, 연금 등의 제도개혁을 추진했지만 이익집단 반발을 극복하지 못해 실패했다. 국회와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제도를 개혁해 기업투자를 늘어나게 해서 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제도개혁을 하지 않고 신산업에서 경쟁력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장기침체, 저성장 경험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특성 때문에 저성장의 고통은 일본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 우려된다.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고령층의 노후소득이 감소하면서 결국 가계부채와 정부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해 반복적으로 금융 및 외환위기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번에 출범할 새 정부 경제팀의 올바른 정책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