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비기축통화국은 통화정책만으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함께 달성하기 어렵다"며 "거시건전성 정책, 외환시장 개입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한 통합적 정책체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8월 금리인하 실기론에 대해서도 재차 반박하며 "1년 뒤에 평가해달라 했지만, 그때 쉬어간 것이 10월과 11월에 금리를 두 번 연속 낮출 수 있는 여력을 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에 참석해 '통합적 정책체계: 한국 통화정책 적용'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비기축통화국은 글로벌 금융상황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높기 때문에 자본이동과 환율의 변동성이 크고, 외환시장에서 최종대부자 역할도 제한돼 있다"며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는 비기축통화국들이 다양한 정책 수단(거시건전성 정책, 외환시장개입 등)을 조합하는 통합적 정책체계(IPF, Integrated Policy Framework)를 활용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IMF와 BIS에 따르면 통합적 정책체계 하에서 가능한 정책 수단은 통화정책·거시건전성 정책·자본이동관리정책·외환시장개입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통화정책에는 금리조정, 유동성 공급이 포함되고 거시건전성 정책에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의 신용관리 대책이, 자본이동관리정책에는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이 해당된다.
그는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해 4000억달러가량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2022년 하반기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상회하는 등 단기간 급등했지만 과거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건 4000억달러를 상회하는 외환보유액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거주자의 해외투자도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는 2014년 이후 순대외자산국으로 전환돼 환율 상승으로 인한 부도 위험이나 금융위기 가능성이 크게 축소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IMF는 이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수준을 신흥국과 같이 정량평가하지 않고 정성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며 "2023년 이후 신흥국을 대상으로 적용해 온 외환보유액 적정성 평가(정량평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8월 금리 인하 실기론에 대해서도 재차 반박했다. 이 총재는 "지난 7~8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기대가 커지고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도 2% 밑으로 내려가며 시장금리도 미리 내려가기 시작했다"며 "8월에 금리를 낮춰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은 직원들이 6~7월 데이터를 보고 9월부터 가계부채가 9조원 늘어날 것이라 예측했는데 실제로 그 이후 가계부채가 9조원을 넘었다"며 "그 당시(8월)에 금리를 낮췄다면 가계부채와 부동산을 컨트롤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년 뒤에 평가해달라 했지만, 그때 쉬어간 것이 10월과 11월에 금리를 두 번 연속 낮출 수 있을 여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