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권한대행, 거부권 행사 고심…野 협조 잃을 수도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 내일 국무회의
정부 입장은 "거부"…행사 땐 야당 반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야당이 단독 처리한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놓고 막판 고심에 들어갔다. 기존의 정부 입장대로라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이 경우 야당이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총리실 등에 따르면 정부는 국무회의를 하루 앞둔 현재까지 그간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이들 법안에 대해 국무회의 상정 및 거부권 행사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무래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며 "그간 정부가 반대를 천명했던 법들이고, 이제 와 다른 소리를 하면 정치 상황에 따라 입장이 왔다 갔다 하는 꼴"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표결 불참에 따른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무산된 가운데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문제가 되는 법안은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등 이른바 '농업 4법' 개정안과 국회법 및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들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지난 13일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이들 법안은 지난달 28일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고 지난 6일 정부로 이송됐다.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17일 예정된 정례 국무회의에서 법안 재의요구안을 상정·심의·의결하지 않으면, 거부권 행사를 위해 별도의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거부권 행사가 유력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한덕수 권한대행은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야당과의 협력은 요원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할 경우 탄핵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건 쉽지 않다.

더구나 한 권한대행은 비상계엄 사태 관련 수사에서 피의자 신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총리 탄핵' 카드를 거둬들이고 국정 수습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압박 수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당과 정부에 일임한다는 담화 발표 이후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그간 거부권 행사는 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을 의결한 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는 절차로 진행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한 권한대행은 총리로서 재의요구안 의결 회의를 주재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이를 재가하는 절차까지 밟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고건 권한대행은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보상에 대한 특별법, 사면법 개정안 등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였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국무조정실장으로 관여했다.

한편, 한 권한대행은 이날부터 분야별로 대통령실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박춘섭 경제수석, 신중범 경제금융비서관 등으로부터 보고를 청취했다. 방기전 국조실장도 배석했다. 이어 이번주 사회, 과학기술, 저출산 등 다른 수석실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업무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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