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계엄군 300명 국회 장악 못해'…전두환 땐 98명이 국회 점거[뉴스설참]

(48)1980년 계엄과 국회 투입 병력 비교해보니
내란죄 성립 쟁점 '국회 무력화 목적'
尹 "국회 무력화 의도 없어…소수 병력 배치"

편집자주'설참'. 자세한 내용은 설명을 참고해달라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다. [뉴스설참]에서는 뉴스 속 팩트 체크가 필요한 부분,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콕 짚어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300명 미만의 실무장하지 않은 병력으로 그 넓디넓은 국회 공간을 상당 기간 장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회 질서 유지를 위해 실무장 하지 않은 소수의 병력만 배치했다며 국회 기능 무력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계엄을 하려면 수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는 달리 1980년 5월18일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했을 당시 국회 점거 병력은 98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왼쪽),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국회 장악 280명 부족? 1980년엔 98명…다만 실탄 지급은 X

12·3 계엄 당시 국회에 배치된 병력은 280여명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에 따르면 비상계엄 당시 헬기를 이용해 계엄군 230명, 추가로 50명 등이 국회에 진입했다. K1 기관단총 등으로 무장한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특수작전항공단을 비롯해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임대 등이 투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44년 전 비상계엄 당시 국회 배치 병력보다 많은 수준이다. 1997년 4월17일 선고된 전두환 씨 등 17명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80년 5월18일 오전 1시45분쯤 계엄군 소속 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장교 3명, 사병 95명 등 총 98명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해산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점은 '실무장 여부'다. 1980년 국회를 점거한 병력은 M16 소총을 휴대하고 경장갑차 8대와 전차 4대를 지원받았다. 이들은 국회로 출입하려는 의원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무력을 행사했으며, 여·야 정치인을 체포했다.

12·3 계엄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실무장 하지 않은 병력"을 국회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K1 기관단총 등을 지급받았지만 당시 군 지휘관만 현장에 실탄을 가져갔을 뿐 군 개인에게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절대 실탄 지급을 하지 말고 공포탄 및 테이저건을 사용하지 말라"고 구두 지시했다고 밝혔다(지난 6일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튜브 방송). 김현태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 단장 역시 "정문 몸싸움 당시 개인이 휴대한 총기 2정(권총과 소총)만 갖고 이동했다"며 "실탄은 통합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지난 9일 기자회견).

尹 "국회 무력화 시도 없었다"…전 특전사령관 "'의원들 끌어내라' 지시 있었다"

검경은 윤 대통령이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내란죄(형법 87조)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경우에 해당하는데, 국헌 문란(형법 제91조)은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헌법기관인 국회의 제 기능을 못하게 하려고 폭동을 일으켰다면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 씨 등 17인에 대해 "국회의사당을 병력으로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금지해 상당 기간 국회가 개회하지 못했다면 이는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라며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국회의원 등 많은 인파가 들어갔고, 계엄 해제 안건 심의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계엄령을 발표한 지 2시간30분 만에 국회 정족수 150명을 채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으며, 대통령실이 이 요구안을 받아들여 계엄 해제를 선포했기 때문에 국회 기능이 마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계엄 직후 발표된 포고령 '국회와 정당 등 정치활동 금지'가 명시된 것이 국회 무력화 목적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곽 전 사령관이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707 특임단장 역시 "(탄핵안 의결 정족수인)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 진입할 수 있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기획취재부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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