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칼럼]걸프 국가는 미·중 하나만 선택하고 싶지 않다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해진 걸프협력회의(GCC)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으로 인해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미국 파트너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를 제한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GCC 국가들과 미국 관계의 강도를 시험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의 첫 퇴임 이후 GCC는 중국과 가까워졌고, 중국은 회원국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미국의 힘에 대한 역내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 사우디를 지원하는 미국이 사우디 유전에 대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막지 못한 게 하나의 사례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를 거래 방식으로 개선하고자 할 것이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사우디가 무려 11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무기를 구매했을 때 효과가 있었다. 사우디는 트럼프 당선인이 첫 재임 시절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사우디와 UAE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요 초점은 기술, 보안 및 금융에 맞춰질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와 UAE가 특히 인공지능(AI)과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중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 UAE는 지난 9월 미국 압력에 따라 AI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모두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에 초대받았다. 사우디는 상하이협력기구의 대화 파트너로 승격되기도 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다자 협력 확산은 차기 미국 행정부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분명 중국을 앞지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GCC 회원국들은 4년 전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 걸프 국가들은 단일 주요 행위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다중 외교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2.0 기간 동안 GCC는 미·중과 계속 협력할 것이지만 관계는 고도로 거래적일 것이다. 미국이 관심을 갖지 않는 중국-GCC 협력 분야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대중 무역에 있어서는 미국이 GCC에 대해 특별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디지털 인프라, 무역,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경우 사우디와 UAE는 중국 대신 미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헤지 전략은 지금까지 충분히 효과가 있었으며 향후 몇 년 동안 굳어질 것이 유력하다.

걸프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모두와 유익한 관계를 원한다. 두 개의 초강대국과 관련해 어려운 전략적 선택을 피하는 것이 이들 국가의 집단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걸프 국가들의 모든 움직임은 미·중 사이의 힘의 균형을 계산하는 데 기반할 것이다.

이러한 다각적 비전은 걸프 국가들이 미국을 중국으로 대체한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걸프 국가들은 중국의 유보적인 태도와 실질적인 군사적 한계를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걸프 지역의 어떤 국가도 다른 대국에 의해 지배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이 UAE나 사우디에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든 중국은 여전히 투자, 석유 구매 등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될 것이다. 중국은 또한 GCC 회원국과의 경제 및 국방 관계를 강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UAE, 사우디 또는 다른 회원국들에 친중적인 입장만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걸프 국가들과 미국과의 관계는 중국에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 당선인의 거래주의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미국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 요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GCC가 추구하는 다중 외교 정책은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펼쳐지는 더 큰 외교적 추세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중동에서 중앙아시아, 심지어 남캅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이 외교 정책 선택지를 다각화하면서 단일 강대국에 대한 전통적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은 GCC에 있어 다극성의 부상과 글로벌 문제에서 보다 거래적인 접근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서방에 있어 다극화 추세는 힘의 균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추세를 지지하는 것이 서구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강대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이로써 중국과 GCC는 4년 전보다 훨씬 더 편안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를 뒤집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에밀 아브달리아니 유러피언대 국제관계학 교수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Why Gulf countries don’t want to choose between China and the US’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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