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주기자
올해 LG그룹의 인사 방향은 '안정'이었다. 지난해 큰 폭의 세대교체를 단행한 LG는 올해엔 LG유플러스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재신임하고, 부회장단도 권봉석·신학철 '2인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ABC(AI·바이오·클린테크) 등 미래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한 기틀을 다지기 위해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해 변화를 꾀했다.
LG그룹은 21일 이사회를 열고 지주사인 LG와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유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의 2025년도 임원 인사안을 의결했다.
권봉석 ㈜LG 부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등 핵심 계열사 CEO들은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와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대부분 유임됐으며 사장 승진 2명 등을 포함한 총 121명만을 승진시킨 것이 특징이다. 전체 승진 규모는 지난해 139명 대비 18명이 줄어들었다.
부회장 승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작년 인사에서 '44년 LG맨' 권영수 전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구광모 회장 취임 당시 6명이던 부회장단은 현재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이 부회장 승진 하마평에 올랐지만, 형식이나 격식보다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구광모 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부회장단을 추가로 확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구 회장 체제에서 부회장 승진자는 2021년 말 인사에서 승진한 권봉석 부회장뿐이다.
LG 관계자는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임원 조직을 슬림화해 구조적 경쟁력 강화의 기반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그룹 내 유일하게 사령탑을 교체한 곳은 LG유플러스였다. LG유플러스는 4년 만에 CEO 교체를 단행, LG 경영전략부문장인 홍범식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홍 사장은 2022년부터 LG유플러스와 LG헬로비전의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으며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해왔다. AI 경쟁에서 LG유플러스가 우위를 점하고 AX(AI 전환) 컴퍼니로 도약하는 전략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LG전자에서는 김영락 한국영업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사장은 마케팅 및 영업 전문가로, 구독 서비스 전개와 온라인 브랜드 숍(OBS) 매출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해낸 성과를 인정받았다.
현신균 LG CNS CEO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AI 등 디지털 신기술 기반 디지털전환(DX) 사업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평이다.
여성 인사에서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번 인사에서는 김지연 LG전자 한국영업본부 한국영업CX담당(상무) 등 여성 임원 7명이 신규 선임됐다. 이에 따라 LG 내 여성 임원 수는 2018년 29명에서 역대 최다인 65명으로 늘어났다. 1980년대생 임원 수는 총 17명으로 늘어 5년간 3배 증가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전체적인 조직 슬림화를 꾀한 구광모 LG 회장은 의사결정 속도 높이고 대외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수익성 확보 방안에 대한 전략을 세울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AI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1980년대생 3명을 임원으로 선임하는 등 신규 임원의 23%를 ABC 분야에서 발탁하며 변화의 움직임을 드러냈다. 미래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 분야 차세대 리더십도 강화했다. 신규 임원 21명을 포함해 그룹 R&D 임원 수는 218명으로 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특허 관리 체계 구축과 특허 조직의 역할 강화를 위해 특허 전문가 2명의 승진 인사도 진행했다.
LG 관계자는 "LG의 임원 인사는 도전적 목표를 세워 변화와 혁신에 속도를 높일 것을 강조한 구광모 ㈜LG 회장의 경영철학을 반영했다"며 "여성 및 젊은 인재 발탁과 외부 영입 통해 리더십 다양성과 역동성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LG전자는 이날 5년 만에 사업본부 조직을 대거 재편했다. 특히, B2B 가속화의 한 축을 맡은 HVAC(냉난방공조) 사업의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ES(에코 솔루션)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주요 사업 부분을 통폐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