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트럼프의 감세 정책으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급증해 큰 후폭풍이 우려됩니다. 그가 공약한 관세 인상 또한 '오일 쇼크'에 맞먹는 공급 충격을 초래해 전 세계 물가가 상승하고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충격파를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글로벌 경제 석학인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11일(현지시간) 아시아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거시경제 전망에 대해 "소득세·법인세 인하, 팁·사회보장급여 면세와 같은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매우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1%에서 15%로 낮추고, 소득세 인하 등 내년 만료되는 감세 조치를 영구 연장한다는 방침이다. 대선 압승과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장악하는 '레드 스위프'로 트럼프 당선인의 감세 정책은 의회의 문턱을 손쉽게 넘으며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프랑켈 교수는 그가 공약한 감세 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법인세 인하를 통한 성장률 제고 및 중장기적 세수 증대 효과에 "누구나 이 같은 정책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트럼프가 공약한 감세 정책은 장기적으로 부채를 증가시키는 실질적인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시장뿐 아니라 비금융 민간 부문도 국가 부채를 우려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감세를 기업 친화 정책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관세맨' 트럼프 당선인은 소득세·법인세 인하 등으로 인한 세수 감소분을 관세를 올려 충당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모든 국가에 보편관세 10~20%, 대(對)중국 관세 60% 부과를 예고했다. 프랑켈 교수는 이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트럼프는 관세를 통한 세수 증대 효과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며 "세 감면 폭이 너무 커 관세를 올려도 줄어든 세수를 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조세재단에 따르면 소득세 인하 등을 영구화하면 연방정부 세수는 향후 10년 동안 4조2000억달러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편관세를 10% 올리면 10년간 2조달러, 20% 올리면 3조3000억달러의 관세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보편관세를 최대 20% 적용해도 소득세 인하로 인한 세수 부족분을 메울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히려 트럼프발(發) 관세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거시경제 후폭풍을 프랑켈 교수는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가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할 경우 미국 소비자 물가가 오르고 실질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응해 다른 나라가 보복 조치에 나서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실질소득과 구매력이 감소해 글로벌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오일쇼크'나 '자연 재해' 수준의 충격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가뜩이나 심각한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프랑켈 교수는 재정적자 악화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 지출을 줄이고 증세 등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는 "연금 수급 연령을 상향 조정하고 세율을 조정하는 등 사회보장제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 지출과 세제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정적자 문제가 수십 년 전보다 악화됐는데도 정책입안자나 의회는 당시와 비교해 혼란스러울 정도로 손을 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재정적자 악화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도 폭탄급 충격이 될 수 있다. 미 국채 발행이 증가하고 발행 금리가 뛰면 글로벌 금리 역시 상승하게 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긴축 역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Fed의 독립성 침해 문제도 트럼프 2기에서 우려되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 시절 제롬 파월 Fed 의장의 해임을 수 차례 거론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가 파월을 법적으로 해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된다"며 "Fed의 독립성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됐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전 세계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에 정치 논리가 개입될 공산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비판과 달리 Fed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켈 교수는 "많은 이들이 Fed가 금리를 너무 늦게 올리고, 또 너무 늦게 내렸다고 말하지만 사소한 문제일 뿐"이라며 "(물가 상승에는) 공급망 병목 등 외부 요인이 있었고, Fed의 금리 인상과 공급망 불안 해소로 인플레이션은 하락했다. Fed는 적절히 대응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달러 가치 전망과 관련해서는 "예측이 어렵다"면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모순을 꼬집었다. 그는 "트럼프가 공약한 세금 인하와 관세 인상은 달러 가치 상승 요인"이라며 "말로는 약(弱)달러를 원한다면서 강(强)달러로 연결될 수 있는 정책을 펴려는 건데 트럼프가 이런 모순을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Fed의 고금리 기조를 장기화할 수 있고, 감세 정책 역시 금리 상승 요인이다. 이는 달러 가치를 밀어 올릴 가능성이 높다. 프랑켈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강달러 추세가 지속된 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다른 국가보다 높고, 실질금리도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라며 여러 거시경제 변수가 있어 "달러 가치 흐름을 지금으로선 전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며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노동시장과 경제 성장률이 예상외로 견조하고, 인플레이션 역시 Fed 목표치인 2%에 가까운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내년 미국의 경기침체 확률은 평년과 같은 15%로 예상했다. 다만 '트럼프 불확실성'이 미 경제를 흔들 주요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켈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미국에서만 10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지만 트럼프는 팬데믹 초기 이를 부인했고 결국 큰 피해를 낳았다"며 "그가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는 게 위험 요인이다. 트럼프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한 정책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프리 프랑켈 교수는
제프리 프랑켈 교수는 국제금융과 통화·재정정책에 밝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거시경제 전문가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활동했다.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와 함께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