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진기자
프랑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학생들의 디지털 과의존 정책을 시행 중인 가운데, 여당이 학생들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이에 정부는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내며, 관련 법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
3일 국회와 교육계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은 지난 8월13일 교내에서의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조 의원은 "학생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며 "학생의 정신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의 장과 교원이 허용하는 경우 외에는 교내에서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제20조의3(학생의 휴대전화 사용 지도)'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은 '학생은 교내에서 스마트기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만 교육 목적의 사용, 긴급한 상황 대응 등을 위해 학교의 장과 교원이 허용하는 경우에는 사용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이에 교육부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학생들의 지능·인지·정신건강 발달에 악영향을 끼치고, 학생들이 유해·불법 콘텐츠와 사이버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며 "학생들이 교내에서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한하려는 개정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고 밝혔다.
내년도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전면 보급되는 가운데 디지털 과몰입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교육당국의 인식이다.
현장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교원·학부모단체연합은 지난 9월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SNS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고 있음을 느낀다"며 "법안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지키고 진정한 어린 시절을 되찾아주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가 초4·중1·고1 124만9327명을 상대로 한 '2024년 청소년 미디어 이용 습관 진단 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은 22만1029명이었다. 전체 조사 대상의 17.7%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각각 17만4374명, 12만7845명이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모두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 청소년도 8만1190명으로 집계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학교의 휴대전화 일괄 수거는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제한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룬 만큼 관련 법안 처리에 속도가 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현재 일부 학교에서 시범 시행 중인 스마트폰 사용 금지 규정을 내년도 입학 철에 맞춰 초·중학교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교 안에 별도의 사물함을 만들어 학생이 등교하면 스마트폰을 수거하고 하교 때 돌려주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학생들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 제한 또는 금지를 규정한 법률을 지난 9월 제정했다. 이 법은 교육위원회 등이 2026년 7월1일까지 학생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 또는 제한 정책을 수립하고 5년마다 정책을 검토하도록 했다.
다만 교칙이나 고시가 아닌 법으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들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교 안에서 규칙을 만들거나 학생자치활동 등을 통해서 자기들끼리 하나의 방안을 만들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률에서 스마트폰의 사용과 관련된 원칙이 정해지고 나면 하위규정은 (정부가) 정비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구체적인 제한 방안이나 처벌 규정 등은 학교에서 정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