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라는 서사...비로소 완성된 '햄릿' [On Stage]

마지막 공연까지 오픈 10분만에 매진
역시 조승우라는 호평 이어져

ⓒ예술의전당

배우 조승우가 연극 '햄릿' 무대에 올랐다. 데뷔 후 처음으로 오른 무대다. 조승우는 그간 뮤지컬,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며 '조승우는 곧 장르'라는 수식을 만들어낸 배우다. 덕분에 무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모두 성공한 유일한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다. 배우의 호흡, 발성, 움직임 등이 달라지기에 장르를 오가며 호평받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조승우가 데뷔 24년 만에 처음 연극무대에 선다는 소식만으로 호평은 예견된 일이었다. 예매표가 열리자마자 11월17일 마지막 공연까지 매진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변주되고 있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기에 무대, 조명 의상 등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연출이 인물과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냈는지에 따라, 또 작품을 보는 관객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햄릿'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의 힘도 지대할 수밖에 없다. 관객들 머릿속에 이미 상상하고 있는 햄릿이 있기에,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고 뱉어내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작품의 무게, 속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i>"오직 눈빛만으로도, 짧은 대사 한 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을 수 있어. 진실성만 있다면! 이게 바로 연극이 가지고 있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힘이야!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거울로 비춰주는 일! 이게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일이야? 그러니 제발 인간의 모습을 인간답게 보여줘. 진짜 말을 해 달라고. ‘연극 대사’가 아닌 진짜 사람이 하는 말!"(연극 '햄릿' 중)</i>

조승우는 '햄릿'의 대사처럼 사람(관객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짧은 대사 한 줄만으로, 눈빛만으로, 무대와 관객석의 숨을 멎게 만든다. 뮤지컬 넘버가 없어도 장면에 따라 온도, 속도, 강약을 듬쑥하게 오간다. 마치 단어 하나하나, 감정 하나하나에 음표가 달린 듯, 운율을 타고 팔딱거린다.

아버지이자 덴마크 선왕을 독살한 숙부 클로디어스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그리고 그런 숙부와 혼인한 어머니이자 왕비 거트루드를 향한 원망과 슬픔, 오필리아 앞에 섰을 때 등 장면마다 조승우는 복잡한 감정의 곡선을 유연하게 풀어낸다. 능청스러움과 진지, 고뇌와 갈등, 애절함과 간절함, 분노와 광기를 통해 그동안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었던 햄릿의 깊은 감정 속 서사를 완성했다.

<i>"시대가 변했어. 배우가 쓸데없이 냅다 소리를 지르거나, 가짜 눈물을 짜내거나 과장된 연기를 해서는 관객의 진짜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 명심해줘, 연극은 거울이라는 것을."(연극 '햄릿' 중)</i>

'와이프' '그을린사랑' '세일즈맨의 죽음' 등으로 주목받게 된 신유청 연출은 우리가 알던 햄릿을 좀 더 다각도로 느낄 수 있게 했다.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가 햄릿 친구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에게 햄릿을 감시하라고 하는 장면, 폴로니어스가 레이날도에게 프랑스로 떠난 레어티즈를 감시하라고 하는 장면이 한 프레임에 담기며 대사가 교차된다. 이밖에도 덴마크 선왕과 햄릿, 폴로니어스와 레어티즈, 노르웨이 선왕과 포틴브라스 등을 통해 세대가 교체되는 과도기를 작품 곳곳에 녹여놓았다.

절대 가볍게 즐길 수는 없는 작품이긴 하지만,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과 강원철이 아닌 햄릿과 클로디어스로 볼 수 있기에 연극 비기너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정재은, 김영민, 백석광 등 배우들과 서로 다른 합을 보여주는 조승우의 햄릿은 3시간을 30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맨 오브라만차' '헤드윅'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베르테르' '오페라의 유령'까지. 보다 '깊은' 인물로 재탄생시킨 조승우에게 햄릿의 감정이 켜켜이 쌓인다면 과연 어떤 햄릿이 탄생할까. '햄릿'은 조승우의 연극 필모그래피 시작일 뿐이다.

기획취재부 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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