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환기자
"우리의 경쟁 상대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곳입니다. (백화점에) 접근하는 패러다임을 바꿔 서울에 오면 꼭 와야 할 장소로 설정했습니다.
정지영현대백화점 대표는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글로벌패션포럼에서 더현대 서울의 추진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백화점의 틀에서 벗어나 서울에 온다면 꼭 방문해야 하는 랜드마크로 설정했다는 뜻이다.
정 대표는 이날 한국패션산업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더 현대(THE HYUNDAI) : 미래비전'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그는 더현대 서울과 커넥트현대 부산을 사례로 들어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방법에 대해 강연했다.
정 대표는 더현대 서울의 추진 과정을 첫 사례로 제시했다. 정 대표는 "더현대 서울 추진 당시만 해도 백화점이 쇠퇴하는 동시에 온라인 채널이 부상하던 때"라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내부 토론에서 찬성과 반대의 비중이 3대 7에 달할 정도였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털어놨다.
현대백화점이 더현대 서울을 추진한 건 백화점 3사 중 유일하게 서울 내 대형 매장이 없어서였다. 정 대표는 "내부적으로 우리도 큰 점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컸다"고 설명했다.
더현대 서울은 다른 백화점 점포와 비교해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개점 시기가 겹쳐 모객에 영향이 있었고, 백화점 흥행을 위한 지표로 꼽히는 주요 명품 브랜드도 입점하지 않았다.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단지인 여의도에 자리 잡은 탓에 저녁 시간대와 주말 유동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섬이라는 입지 특성상 진입로도 제한됐다.
더현대 서울을 백화점이 아닌 랜드마크로 설정한 전략은 들어맞았다. 더현대 서울에 유휴 공간이 발생했는데, 이곳에 신생 K-패션 브랜드의 점포를 유치하고 대형 팝업 스토어를 연 게 소위 '대박'을 쳤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필수 방문 장소로 자리잡으면서다. 더현대 서울의 추진 과정에서 젊은 직원들을 대거 참여시킨 게 효과를 발휘했다.
정 대표는 "기존 백화점의 서비스를 넘어 새 미래 현대백화점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콘텐츠를 연구하고 새로 개발했다"면서 "온라인 채널이나 주요 명품 없이도 최단기간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고, 2022년부터 2년 연속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급량 1위에 올랐다"고 강조했다.
커넥트현대 부산 역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로 제시됐다. 부산 구도심 지역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부산점은 경쟁 백화점들이 해운대에 잇따라 대형 점포를 내면서 위기를 맞았다. 인근 상권 역시 공실률이 30%에 달할 정도로 쇠퇴했다. 한때 부산점의 폐점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현대백화점이 내놓은 대책은 백화점과 아울렛, 여가시설을 한데 모은 복합형 매장이었다. 우수 고객과 서민, 젊은 고객과 중장년층 모든 고객층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다. 정 대표는 "커넥트현대는 엔터테인먼트와 가성비, 프리미엄과 로컬이 비빔밥처럼 융합된 점포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면서 "커넥트현대 부산 개점 후 한 달이 지났는데, 초기 반응도 좋은 편이다. 완성도는 70%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유통업이 나아가야 할 6가지 방향성도 제시했다. 정 대표가 제시한 방향은 ▲업태 간 융합모델 추구 ▲10인 10색 ▲트래픽 증대 ▲고객 행복 우선 ▲오프라인과 온라인 동시 전략 ▲글로벌 진출을 위한 다양한 시도 등이다.
정 대표는 마지막으로 "더현대 서울과 커넥트현대 등의 성공은 모두 최대 위기에서 기회를 찾은 사례였다"면서 "한국 패션이 큰 위기에 놓였다고 볼 수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도약할 수 있는 큰 기회일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정 대표는 포럼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커넥트 현대 2호점을 청주점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5월 완공되는 청주 센트럴시티에 커넥트현대를 입점하는 방안을 저울질해왔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정 대표에 이어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2025 키워드로 살펴본 K-패션의 지향점'을 주제로, 유정현 대신증권 기업리서치부 팀장이 'K-패션 글로벌 도약 가능성'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이지윤 숨프로젝트 대표, 박주원 시몬느 패션 컴퍼니 대표, 유진성·박지우 모노타입서비스 공동대표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K-패션 브랜드 경쟁력 활성화'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