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한민국, 헌법상 적대국가'…'분리 국가' 수순

'통일' 삭제 혼란 딜레마…'先 요새화' 추진
노동신문 공개, 단계적 현실화로 주민 설득
'유사시 군사원조' 북·러 조약 발동할 듯

북한이 남과 북을 '분리 국가'로 만들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 남북 연결도로 폭파 사실을 주민에게 공개하며 '대한민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한다'는 헌법 개정 내용을 일부 드러냈다.

북한은 17일 대내외 매체를 통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소식을 전하면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헌법의 요구"라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물론, 본지가 입수한 노동신문 1면에도 이런 내용이 실렸다. 폭파 장면이 담긴 사진 3장도 공개했다.

'先 요새화' 추진, 단계적 현실화로 주민 설득

북한 노동신문 17일자 1면 하단에 공개된 남북 연결도로 폭파 보도.

특히 이번 조치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제122호에 따른 것이라며 "적대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으로 말미암아 예측불능의 전쟁 접경에로 치닫고 있는 심각한 안보 환경으로부터 출발한 필연적이며 합법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남측의 도발로 전쟁 위기가 닥쳤고, 북한은 그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전형적인 '피포위 의식' 고취 전략으로 보인다. 외부의 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해 내부 통제력을 높이는 작업이다.

북한은 이번 폭파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의 영토를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단계별 실행'의 일환이라며 분리 조치가 계속될 것을 시사했다. 국방성 대변인은 "폐쇄된 남부 국경을 영구적으로 요새화하기 위한 조치들은 계속 취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부터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그에 따른 헌법 개정 지시가 이뤄졌지만, 지난 7~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선 개헌 여부가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북한의 발표로 '적대국가 규정'이 간접 확인됐지만 통일 개념 삭제와 영토 조항 신설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북한은 그간 '통일 폐기'의 명분을 단 한 차례도 설명하지 못했다. 새 영토 조항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딜레마 탓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한국과 미국이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선(先) 단절 이후 단계적 현실화로 내부 설득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도로 폭파 당시 카메라까지 세워놓고 TNT 위에 흙을 덮어 거대한 폭발을 연출한 건 주민에게 위기를 각인하기 위한 의도"라며 "수령의 머리 위 평양 방공망이 무인기에 뚫렸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도 '두 국가론' 필요성을 주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군사원조' 효력 발동 눈앞…밀착하는 북·러

지난 15일 경의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당시 북한이 투입한 촬영 인원들이 우리 군의 CCTV에 포착됐다. [이미지출처=합동참모본부 제공 영상]

조선중앙통신이 17일 공개한 남북 연결도로 폭파 장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의 분리 조치와 함께 우려를 키우는 대목은 북·러 조약의 현실화다. 지난 6월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사실상 '군사 동맹'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조약의 비준을 위한 법안을 지난 14일 하원에 제출했다.

정부 간 협정을 의회에서 비준하는 건 통상적인 관행이지만, 그 자체로 북·러 조약이 '국제법적 문서'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절차로 볼 수 있다. 비준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이 조약에는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은 아직 비준 절차에 관한 소식이 없다. 북한 사회주의헌법에 따르면 '중요 조약'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장이 비준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최고인민회의를 거치기도 하지만, 수령 체제를 가진 북한에선 김 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단독 비준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고인민회의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 예단하기 어렵지만, 북한에서 조약 비준 절차를 밟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사안"이라고 했다.

한편 북한은 최근 노동신문 지면에서 '주체 연호'를 지운 것으로 파악됐다. 김일성의 출생연도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연도 표기를 없애 '선대 흔적 지우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