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교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승리로 귀결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남긴 후폭풍도 거세게 일고 있다. '제2의 고려아연'을 찾는 움직임이 분주하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주도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진정한 승자'라는 말이 나오는 증권사·로펌·회계법인은 '새로운 먹거리' 덕분에 바쁘게 계산기를 두들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가와 개인 투자자들은 '제2의 고려아연' 찾기에 나서고 있다. 양측이 공개매수 경쟁을 벌인 덕분에 뒤늦게 추격매수에 들어간 투자자도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고려아연을 계기로 "경영권 분쟁은 돈이 된다"는 인식이 확실하게 박혔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 경영권 분쟁이 증가하면서 투자자들은 한미사이언스·에프앤가이드·티웨이항공 등을 통해 주가 상승을 경험한 바 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상장사 리스트도 줄줄이 나오고 있다. 최근 NH투자증권의 리포트에 따르면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지분율 격차가 20%포인트 미만인 상장사 34개를 리스트로 만들어 공개했다. 지분율 격차와 기업가치(밸류), 풍부한 현금까지 고려한 리스트다. 이 중 격차가 3%포인트 이내인 기업도 11곳이다. 물론 1·2대 주주 간 관계가 우호적인 곳도 많지만 관계가 적대적으로 돌변할 경우 충분히 분쟁 가능성이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에도 창업자 일가가 3세대를 이어오며 75년간 동업을 유지한 끈끈한 관계였지만 결국 갈라서면서 "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했다. 리서치알음은 PEF 운용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기업으로 고려제강·사조대림·신도리코·삼목에스폼·동원개발·태양 등을 꼽았다.
MBK파트너스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시장에서는 대체로 고려아연 사태를 '적대적 M&A'로 받아들이고 있다. PEF 운용사 주도의 적대적 M&A로 상장사 경영권을 뺏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인 비상장사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을 벗어난 새로운 전략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 확산할 것"이라는 의견과 "적대적 M&A 유행은 불가능"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PEF 대표는 "외국계 자본이 대부분이며 자금이 막대한 MBK라서 가능한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사모펀드는 불가능한 전략"이라며 "출자자(LP)나 대기업이나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일 정도로 좁은 한국 특유의 정서를 고려하면 절대 유행이 되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공제회도 굳이 논란에 연루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MBK는 앞으로 국내 출자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LP 출자에서 앞으로 'MBK 패싱'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실제 여론 역시 MBK에 상당한 반감을 보인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가량이 '적대적 M&A가 맞다'고 응답했으며 기술 유출 우려와 정부의 개입 필요성에 대해서도 각각 60% 이상이 '우려가 있다'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한편 이번 사태의 진정한 승자는 별다른 리스크 없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와 수임료를 챙길 증권사와 로펌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M&A 시장의 또 다른 핵심 플레이어인 회계법인도 주목받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딜 부문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경영권 방어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의 공식 명칭은 '주주 간 시너지 제고 및 분쟁 해결 자문'이며 지난해 신설된 서비스다. 경영권 분쟁을 우려하는 상장사를 상대로 분쟁을 사전예방하기 위해 삼일이 업계 최초로 만들었다. 삼일 관계자는 "고려아연 사태를 전후로 기업들로부터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날이 갈수록 경영권 분쟁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삼일 외에도 경영권 방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계법인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