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고수열전]⑤한일시멘트 서신석…실패 극복한 '모르타르 박사'

다시 탄생하기 힘든 최고 제품 만들어 '수평 모르타르의 아버지'로 업계 존경
"저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 팀원들과 함께 만든 것" 동료 덕 겸손

"실패의 두려움에 굴복해 도전을 포기하지 말라."

'모르타르 박사', '자동수평 모르타르의 아버지'라 불리는 모르타르 최고수(最高手) 서신석 한일시멘트 기술연구소 품질경영팀장은 연구직들의 가장 큰 문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면서 "피땀 흘려 만든 연구보고서를 두려움에 굴복해 도전하지 않고, 사장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신석 한일시멘트 기술연구소 품질경영팀장(부장)이 타일 접착용 모르타르의 성능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서 팀장은 충남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1월 대전의 한일시멘트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연구직에서만 27년 한길을 걸어왔다. 석사 출신 연구원으로 입사하자마자 단란한 가정도 꾸렸고, 대전 중앙연구소 인근에 본가가 있어 출퇴근도 어렵지 않았다. 당시 선배 연구원이 "콘크리트 위에 뜬 이물질을 분석하라"는 과제를 내줬는데, 나름 보고서를 충실히 작성해 보고했더니 선배들이 "잘했다"면서 잘 챙겨줬고, 일도 재미가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이듬해 10월 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으로 시멘트 연구개발팀이 통째 이동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10개월 된 딸을 키우던 아내가 도심과 동떨어진 공장 사택 생활을 힘들어했다. 게다가 그도 일에 치여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 4년 뒤 중앙연구소로의 복귀를 요청했고, 회사가 배려해주면서 생활은 다시 안정됐다.

생활이 안정되자 일이 다시 재미있어졌다. 건축환경 변화에 대응한 기능성 시멘트 공정 개선, 기능성 레미탈 신제품 개발 등 그가 주도해 개발한 제품들은 사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시장의 반응 역시 뜨거웠고, 고객들의 평가가 바로 전해지면서 희열을 느꼈다. 나중에는 겁이 날 정도로 만든 제품마다 반응이 좋았다.

모르타르 업계 베스트셀러 제조기

2004년 9월 한일시멘트 대전연구소 체련대회 후 연구소 동료들과 기념촬영. 앞줄 가운데가 서신석 팀장. [사진=서신석 개인소장]

백화방지용 점토벽돌 접착전용 제품을 시작으로, 외벽단열용 접착모르타르, 석회계 모르타르, 기능성 세라믹 모르타르, 석고계 모르타르, 친환경 고성능 타일접착제, 지중열교환기용 고성능 시멘트계 그라우트, 콘크리트 슬라브 상부보호 바닥용 모르타르, 인테리어용 속건형 자동수평 모르타르, 실외 면보수용 레미탈, 초속경 혼합시멘트, 속건형 고급바닥 모르타르 등 모르타르 시장에서 알려진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그가 개발한 제품이다.

지금에야 자타가 공인하는 업계 최고 '모르타르 박사'로 불리지만, 그에게도 씻기지 않는 상처와 같은 실패의 경험이 있다. 모두에게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시멘트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저지른 실수라 더 뼈아프다.

서 팀장은 입사 11년 차인 2008년 2년여의 연구 끝에 친환경 제품으로 유럽에서 범용적으로 사용됐던 '석고계 셀프레벨링(바닥용 모르타르)'을 국내 최초로 개발·시판했다. 시공 바닥의 들뜸을 방지하는 획기적인 성능을 인정받아 당시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초고가 프리미엄 아파트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바닥 마감 과정에서 주방바닥 타일 시공 때 석고계 모르타르의 재료 자체 특성으로 인해 접착성이 낮아져 타일이 잘 부착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타일 시공면에 대한 전면 보수·보강시공이 이뤄져야 했다.

"너무 잘 나온 제품"이란 업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시공한 첫 현장에서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친 것이다. 타일 시공 부위의 보수·보강시공에 따른 수억 원의 비용을 물어야 했고, 그는 징계를 받았다. 뼈저린 경험 이후 제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능성 소재를 섞으면서 한달여 만에 개선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다시 우수한 제품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범용화되는데 몇 년을 더 소비해야 했다.

"너무 좋은 제품 자신감, 출시 서둘렀다가…."

한일시멘트 여주공장과 기술연구소는 붙어 있다. 여주공장 앞마당에 출시를 위해 쌓아둔 모르타르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신석 팀장. [사진=김종화 기자]

그는 "미세하게 녹아내리는 석고계 모르타르의 단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면서 "샘플 타설과 시범 시공 등을 더 많이 거쳐 1~2년 정도 추가로 경과를 보고 시장에 내놓았어야 했는데, 너무 좋은 제품이라는 자신감에 취해 출시를 서둘렀던 것이 실수였다"고 회상했다.

제작 공정을 역으로 거스르며 불과 일주일 만에 문제점도 밝혀냈지만, 당시 치기 어린 자만에 취했던 자신과 대내외적 심리적 압박은 그에게 두려움으로 남았다. "잘못되면 정말 큰 사고가 나겠구나"라는 두려움이 한동안 그를 지배했다. 모든 일에 의기소침해졌고, 현장에 나가서는 눈에 불을 켜고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미리 체크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문득 "세상에 완벽한 제품은 없다. 더 발전된 제품이 나오게 돼 있다. 계속 개선해 나가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했고, 다시 도전해보자는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논문도 많이 썼다.

이런 실패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동료들과 함께 2009년 10월 대한건축학회에 발표한 논문 '바닥마감재의 들뜸·변색하자 발생원인 및 저감방안에 관한 연구'는 인용 수가 120여회에 달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시멘트 모르타르와 콘크리트 압축강도 상관관계 분석(2018년, 한국콘크리트학회, 143회 인용), '수경성석회 모르타르의 재료적 특성에 관한 기초연구(2005년, 대한건축학회, 170회 인용)' 등 주요 논문이 학계에 회자됐고, 그 외에도 30여편의 논문을 주요 학회에 발표하면서 모르타르 전문가로 공인받았다.

최후의 미장재 '자동수평 모르타르' 개발로 재기

모르타르의 강도를 측정하는 기기 앞에서 강도 측정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신석 팀장. [사진=김종화 기자]

그의 재기작으로 인정받는 제품은 2010년 출시한 들뜸이 없는 '슬라브 보호용 모르타르 FS시리즈'다. 슬라브용, 바닥용, 옥상용 등으로 용도가 나뉘는 FS 150, FS 300, FS 400 등 FS시리즈는 종전의 히트를 하며 업계 최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타일 접착제인 '폴리픽스 1000'은 분진을 줄여주는 것은 물론, 프리미엄 미장의 경우 한 포대의 중량도 40㎏에서 25㎏으로 줄인 제품이다. 단순히 용량을 덜어내 무게를 내린 것이 아니라, 특성개선제를 혼합해 기존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미장 작업의 편리성을 위해 원료 자체의 무게를 감소시킨 획기적인 제품으로, 모든 작업자가 기본으로 사용하는 제품이 됐다.

가장 사랑받는 제품 중 하나가 '자동수평 모르타르'다. 2008년의 실수에서 비롯된 셀프레벨링 제품의 완전판으로 서 팀장이 개발한 최고의 제품이다. 미장 기술자의 솜씨를 거치지 않아도 바닥에 붓기만 하면 저절로 수평을 잡으면서도 들뜸이 전혀 없이 굳어지는 최고의 미장재다. 여기서 균열제어, 접착력과 강도 등이 보강된 다시 탄생하기 힘든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그에게 '수평 모르타르의 아버지'란 존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서 팀장은 "저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 팀원들과 함께 만든 것"이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이 부분에서 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 통상 어려운 연구는 연구원들이 피해 가거나 긴 시간이 걸리는 결과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런 작업은 먼저 맡아서 묵묵히 수행했다. 그는 "연구소의 일은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 동료의 배려가 절실할 때가 있다"면서 "힘들수록 솔선수범하고, 먼저 배려하려 노력했더니 어느 순간 직원들이 따르고 있더라"고 했다.

'서신석' 이름 박힌 특허 18건 등록

서신석 팀장의 가족 사진. 왼쪽의 큰딸이 지난해 결혼해 손녀를 낳았다. [사진=서신석 개인소장]

그의 이름을 앞세운 특허가 18건이나 등록돼 있고, 각종 국책과제에 참여했으며, 국내 주요 건설사와 공동연구도 진행했다. 이 공로로 우수공로자 및 한국시멘트협회장상 등도 수상했다.

가정도 다복하다. 한일시멘트 기술연구소가 2018년 대전에서 경기도 여주로 옮겨온 이후 주말부부로 살면서도 자신을 늘 챙기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50대 중반(1970년생)에 손녀를 얻었다. 첫 딸이 결혼해 지난해 손녀를 낳아 곧 돌을 맞는다. 손녀의 걸음마 동영상을 내보이며 손녀 바보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더니, 담배 냄새 때문에 손녀가 싫어할까 봐 담배도 끊겠다고 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후배들이나 직장인들에게는 "잘못이나 실수를 했다면 '왜'라는 의문으로 해법을 찾아 나가라"고 조언했다. 잘못이나 실수의 원인을 찾으면서 고민하다 보면 "그 고민이 해결될 때의 희열들이 쌓여 새로운 응용력이 길러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야의 달인(전문가)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수의 한마디

연구직에서만 27년을 일하다 보니 직원들이 제출한 연구보고서만 봐도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어떻게 결론을 이끌어냈는지 한눈에 파악된다. 그러다 보면 내 경험과 지식이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항상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직원들의 보고서를 살핀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품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더 나은 제품을 내놓기 위한 치열한 연구에 '나'만 있으면 안 된다. 동료의 고민(연구)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이오중기벤처부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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