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슬기나기자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인해 자국 디지털 기업이 피해를 볼 경우 미 정부가 이른바 '무역법 301조' 조사 등 대응 조치를 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그간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한국의 법 개정 행보가 미 기업 차별로 이어질 것이란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 가운데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301조를 앞세워 의회 차원에서 강한 압박에 나선 셈이다.
29일(현지시간) 미 연방의회 입법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공화당 캐럴 밀러 하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은 지난 27일 이러한 내용의 '미국-한국 디지털 무역 집행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법안은 한미 양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경제 및 안보 파트너이며 3만명에 가까운 미군이 북한 중국에 맞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이 지난해 511억달러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면서 "부분적으로는 한국의 차별적 경제정책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중국의 테크 기업에 혜택을 주는 동시에 미국 기업에는 지나치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차별적인 디지털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에서 언급된 차별적 디지털 규제는 한국이 추진해온 플랫폼경쟁촉진법을 가리킨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입법 방향' 발표를 통해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반칙행위를 막고, 위법 행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향으로 사후 추정 방식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정위가 제시한 규율 대상 기준에 따르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대기업 외에도 구글, 애플 등 미국 기업이 대상에 포함된다. 미국이 경계하는 중국 기업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법안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이 미국의 온라인 및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사전 지정하거나 사후 추정해 업체들에 차별적인 규제를 부과할 경우 30일 이내에 미국 플랫폼 기업 및 미국 통상에 대한 영향, 무역협정 위반 여부 등을 의회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이 보고서를 토대로 미 상무부 장관이 ▲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제소 ▲ 무역법 301조 조사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분쟁 해결 ▲ 피해 경감을 위한 한국과의 협정 등을 포함해 미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무역법 301조는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로 인해 미국 산업에 차질이 생겼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 권한으로 보복관세 등의 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과의 관세전쟁의 근거로 작동했다.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무역법 301조에 의거해 중국산 전기차 등에 대대적인 관세 인상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밀러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플랫폼경쟁촉진법은 반독점으로 포장됐으나 결국 미국 기업을 겨냥하게 될 것"이라면서 "한국의 법안을 보면 알고리즘의 공개 의무화, 디지털 생태계에서 여러 상품 제공 금지, 문제 행위가 발견되기 전이라도 불공정 거래 행위 조사 착수 시 한국 정부에 (임시) 중지 명령권 부여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미국 디지털 무역을 보호하고 한국 정부가 FTA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을 회원사로 둔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역시 협회장 명의의 성명에서 "개정안은 미국 기업에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존 사전 규제 요소를 그대로 유지한 법안"이라며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중대한 한·미 경제·안보 관계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사전·사후 규제안을 모두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