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고려아연의 제련 기술과 생산능력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고려아연이 중국 기업으로 인수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아연·니켈 등 산업계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 확대를 우려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 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SAFE’에 이어 미국 WSJ는 최근 보도에서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WSJ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중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촉발된 17억 달러 규모의 인수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의 광물자원 지배 우려가 세계 최대 아연제련소를 장악하기 위한 거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전했다.
영풍과 MBK측은 중국 기업으로 기술 유출과 인수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고 있지만 공급망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WSJ는 "고려아연을 둘러싼 대립은 (제련)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만으로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거래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서방 당국자들은 중국이 공급망을 교란시키거나 과잉 공급으로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점에 불안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방의 노력에도 니켈, 코발트, 리튬에 이르기까지 광물 분야에서 중국의 우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중국이 글로벌 광물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의 광물 채굴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지만 정·제련 분야에서는 80~90%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제련은 광석을 녹이거나 산화·환원 등 화학적 방식을 가해 순도 높은 금속을 추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채굴된 광물의 산업적 쓰임을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수적이다. 중국은 이같은 원료 공급망 우위와 가격 경쟁력을 통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주도권을 가지려 한다. 중국이 전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공급망 대항마’인 고려아연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탐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의 경제·안보 담당 디렉터인 헤일리 채너는 WSJ에 "중국의 광물 매입 영역이 아프리카에서 아르헨티나로 확장됐다"며 "언젠가는 고려아연, 그다음에는 세계의 수많은 기업이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고려아연은 아연, 연, 동 등 10여 종의 비철금속을 연간 120만t을 생산하는 등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중국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다. 영국 리서치·컨설팅 업체 우드매켄지에 따르면 지난해 아연 제련에서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49%, 고려아연 및 관계사의 경우 8.5%로 집계됐다. 니켈·리튬 등 배터리 산업의 핵심광물 제련에서도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70~80%를 훌쩍 넘어서는 고려아연은 지난해 배터리 핵심광물인 니켈 제련소를 착공했다. 2026년에는 니켈 생산량도 6만 5000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