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in]'사무관 말고 회계사 할래요'…떠나는 기재부 직원들

로스쿨·의대 가던 기재부 사무관
이젠 시험 붙기도 전에 퇴직 요청
고강도 업무에 열악한 처우 시달려
"과장님 몰래 이직 준비합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들의 조직 이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때 ‘1등 부처’로 불리며 엘리트 사무관들이 몰렸지만, 지금은 ‘탈(脫) 기재부’를 꿈꾸는 사무관들이 수두룩하다. 로스쿨과 의대, 민간기업으로 떠나더니 최근에는 공인회계사(CPA)를 준비하겠다며 퇴사한 직원도 나왔다. 앞으로 퇴사하는 사무관이 더 많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4일 관가에 따르면 최근 기재부에서는 한 사무관이 CPA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면직을 요청했다. 이 사무관은 행정고시 출신의 저연차 직원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재부 사무관 3명이 로스쿨에, 1명은 치의학전문대에 합격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합격하기 전에 시험을 치르겠다며 퇴사한 사무관이 생겼다. 이 밖에도 로스쿨 등 이직을 이유로 퇴사를 준비 중인 기재부 사무관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이탈 조짐도 보인다. 기재부의 A사무관은 “로스쿨을 갔던 사무관은 (동기들로부터) 시험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묻는 전화를 수십통 받은 것으로 안다”면서 “과장님 몰래 이직을 준비하는 사무관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B사무관은 “일하면서도 전문직에 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알게 됐다”면서 “야근하고 오면 너무 피곤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릴 때 공부해서 빨리 나가는 게 낫다”고 털어놨다.

기재부 사무관들의 퇴직은 더 빨라지고 과감해지는 추세다. 2022년에는 경제구조개혁국의 한 사무관이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로 이직했다. 10년간 공직에서 에이스로 불리던 사무관의 퇴직에 관가가 술렁였다. 같은 해 행시에 합격한 지 만 1년이 된 사무관은 네이버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경력을 인정받지 않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화제가 됐다. 2021년에는 기재부 사무관이 계약직인 국회 보좌진으로 이동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조직을 떠나려는 배경에는 처우에 대한 불만이 있다. 기재부는 밥 먹듯이 야근을 할 정도로 다른 부처에 비해 업무강도가 세다. 하지만 민간과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임금 수준은 83.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21년부터 3년간 물가상승률이 11.6%에 달했지만, 공무원 보수 인상률은 4.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공무원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7.5% 감소했다.

인사 적체도 문제다. 5급 기재부 사무관은 4급 서기관 승진까지 통상 13~15년이 걸린다. 다른 부처는 통상 8~10년 차에 서기관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승진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3급인 부이사관 자리는 과장을 여러 차례 거쳐도 오르기 어렵다. C사무관은 “회의장에서 과장님이 된 다른 부처 동기를 만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내부에서는 퇴사하는 사무관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기재부의 한 간부급 관계자는 “임금이나 연금 등 처우를 생각하면 후배들한테 예전처럼 일을 시키기 미안한 시대가 됐다”면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무관들의 퇴사율이 확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