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교기자
국민연금이 올해 달라진 기조로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지갑을 열면서 시장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6년 만에 코어플랫폼 펀드를 포함한 부동산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계획이며, 최근엔 도심권역(CBD)의 '더익스체인지서울'에 25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투자를 하기로 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투자도 3년 만에 처음이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부동산에서도 예외가 없다. 특히 코어플랫폼 펀드로 선정되는 운용사는 시장의 주도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18년 코어플랫폼 펀드 운용사로 선정된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우 펀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장의 톱플레이어로 활약해왔다. 코어플랫폼 위탁운용사에 총 3개 사, 7500억원 규모로 출자한다. 11월 중 접수를 마감하고 내년 1월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또한 기금 설립 후 처음으로 부동산 대출펀드에 6000억원을 출자하기로 하는 등 총 1조3500억원의 부동산 출자가 예정되어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이해한다면 '큰손' 국민연금의 투자 확대는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동규 삼일PwC 부동산솔루션센터장은 "극심한 하락장을 겪은 외국과 달리 한국의 상업용 오피스 시장은 견고한 수요를 유지해왔다"며 "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여전한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은 대부분 대면 업무로 복귀한 문화적 차이가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박 센터장의 설명에 따르면 외국계 투자자들은 과거 한국의 오피스도 당연히 침체를 겪을 것으로 여겼지만 최근엔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국내 오피스 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정동빌딩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미국 교직원연금기금 산하 누빈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지표를 들여다 보면 '상업용 부동산 위기'라는 말이 계속 나왔던 외국과 선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세계 최대 부동산 서비스기업 CBRE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A급 오피스의 공실률은 1.5%였다. 재택근무 활성화로 공실률이 20~30%라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2019년 대비 출퇴근 유동 인구 회복률은 99%에 달했다. 업계 관행인 무상임대 기간(렌트프리)은 0.8개월로, 2008년 이후 15년 만에 '1개월 벽'이 무너졌다. 렌트프리를 감안한 실질 임대료 상승률은 15.2%를 기록했다. 오피스 시장에서 임대인 우위 기조가 견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의 리더십 교체도 부동산 투자 확대 기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선임된 안준상 부동산투자실장이 주인공이다. 국민연금은 부동산플랫폼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더익스체인지서울'에 약 25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안준상 체제'에서 달라진 부동산 투자를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건물은 싱가포르투자청(GIC)이 내놓은 매물이며 코람코자산운용이 국민연금과 손잡고 인수 후 재개발할 계획이다.
오피스 시장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 부족 때문이다. 올해 임차 가능한 신규 A급 오피스만 봐도 사학연금의 여의도 TP타워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이 건물에는 신한투자증권을 포함한 신한은행, 신한자산운용, 신한캐피탈 등 신한금융그룹 계열사와 키움증권 등 대형 증권사가 속속 입주하면서 여의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박동규 부동산솔루션센터장은 "앞으로 2년간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분간 임대인 우위 시장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고금리 시기 부동산 대출펀드 투자에 집중했던 다른 연기금·공제회도 부동산 지분 투자(에쿼티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HJ중공업 용산사옥 우선주에 지난해 200억원에 이어 32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금리 인하 역시 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진형석 삼정KPMG 기업부동산자문본부장은 "상업용 부동산은 밸류에이션 하방 압력 때문에 고금리 시기에 거래가 소극적으로 이뤄져 온 측면도 있다"며 "여전히 '경기침체(Recession)의 공포' 등 불확실성은 있지만 금리 인하가 밸류 하방 압력을 제거하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