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인텔 이상하게 닮았다?…이 나라 때문 [테크토크]

엔비디아·인텔 핵심 연구소 있는 이스라엘
AI도 고성능 CPU도 실리콘 와디서 만들어

미국을 대표하는 두 반도체 기업의 공통점은 이스라엘입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경쟁력은 이스라엘 스타트업 '멜라녹스'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 인텔 칩 디자인의 핵심 부서도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차별점 고속 네트워크, 이스라엘에서 만들었다

엔비디아는 2019년 3월11일 멜라녹스를 인수·합병했습니다. 인수 계약가는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 테크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빅 딜' 중 하나였으며, 멜라녹스의 모든 직원과 자산을 전부 엔비디아 소속으로 전환하는 데도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멜라녹스는 1999년 이스라엘에 설립된 네트워킹 기술 스타트업입니다. 인수 당시엔 직원 규모는 약 2000명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일명 '인피니밴드'라고 불리는 통신 연결 방식을 지원하는 기업입니다. 오늘날 기업용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면 인피니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프레임 안에 놓인 컴퓨팅 장치들을 연결한 복잡한 케이블인데, 한 번에 수천개 이상의 칩을 연결해 초대형 시스템을 만들 때 필수적입니다.

이스라엘 멜라녹스 직원들과 만나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미지출처=엔비디아]

2019년 당시에도 인피니밴드는 클라우드나 고성능 컴퓨팅(HPC)의 필수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멜라녹스에게서 바라본 건 AI의 잠재력이었습니다. 엔비디아는 신경망을 비롯한 기계 학습은 초대형 AI가 대세를 이룰 거라 예상했고, 멜라녹스를 인수해 엔비디아만의 저지연 고속 네트워킹인 'NV스위치'와 'NV링크'를 만듭니다.

이 두 가지 기술이 현재까지 엔비디아의 독점력을 지키는 성채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멜라녹스 직원들을 특별히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텔 CPU 전설 써 내려간 '하이파 센터'

인텔은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종합 반도체 기업(IDS) 중 하나입니다. IDS란, 반도체 설계부터 실제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하는 기업입니다. 따라서 인텔에는 위탁생산(파운드리)만큼 중요한 게 반도체 설계 지부들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디자인 센터는 인텔의 모든 오피스 중에서도 '왕관의 보석'으로 손꼽힙니다.

인텔 하이파 디자인 센터. [이미지출처=인텔]

하이파 센터는 인텔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는 연구개발(R&D) 총본산입니다. 코어 M, 샌디 브리지, 스카이레이크 등 한때 인텔 중앙처리장치(CPU)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려 준 수많은 브랜드가 하이파 팀의 손에서 탄생했으며, 최신 CPU인 '루나레이크'는 사실상 하이파가 개발을 진두지휘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인텔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자회사인 '모빌아이', AI 가속기 개발을 맡는 '하바나 랩스'도 모두 이스라엘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테크 산업, 경제 넘어 이스라엘의 안보 고정핀으로

미국 경제 안보의 핵심인 반도체 기업들과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전략적 무기'로 쓰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로부터 침공을 당한 뒤 가자 지구에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는 이스라엘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며 국제 사회 일각의 지탄을 받았지만, 미국의 굳건한 지지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런 끈끈한 동맹 관계를 바로 엔비디아나 인텔 같은 테크 기업들의 투자에서 찾습니다. 히브리어 매체인 '이스라엘 하욤'은 최근 낸 기사에서 멜라녹스를 언급하면서 "이스라엘과 엔비디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우리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앞으로도 기술 분야를 비롯한 각종 패권 경쟁에서 선두 지위를 지키려면 이스라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자신감입니다.

군인들이 일으켜 세운 이스라엘 IT

이스라엘의 테크 중심지인 하이파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이스라엘 기술 산업의 힘은 수도 텔아비브 인근의 IT 기업 군집 단지인 '실리콘 와디(Silicon wadi)에서 옵니다. 와디는 '마른 계곡'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텔 아비브가 세워진 땅을 빗댄 표현이기도 합니다. 약 6500개 기술 기업들이 모인 실리콘 와디는 실리콘 밸리와도 견줄 만한 위상을 자랑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테크 산업과 스타트업 문화도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미국 기업이 나옵니다. 1990년대 당시 세계 최고의 무선통신 기업이었던 모토로라가 이스라엘에 R&D 센터를 세우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테크 협력이 시작됐고, 이후 미국계 글로벌 법인들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몰리면서 실리콘 와디는 본격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독특한 점은 실리콘 와디의 성장 과정에 기여한 일등공신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군대'라는 겁니다. 하마스, 헤즈볼라 등 적대적인 무장 단체들과 국경을 맞댄 특성상 이스라엘도 징병제 국가입니다. 이스라엘군은 1960년대부터 정보전 역량을 키우기 위해 IT에 특화한 기술병과인 일명 '맘람(Mamram)'을 양성해 왔는데, 전역한 맘람들이 막 성장하기 시작한 IT 기업들에 귀중한 인적 자원을 제공하면서 지금의 실리콘 와디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맘람은 지금도 이스라엘의 민간, 군사 영역을 책임지는 핵심 인력 중 하나로 전해집니다.

이슈&트렌드팀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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