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기자
자동차에서 불은 언제고 날 수 있다. 물론 불이 안 나는 게 모두에게 좋겠지만 언제든,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천㎏짜리 물건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상당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뜻이다. 에너지는 곧 열이다. 현대 이후 공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열을 보다 안전하게 다스리는 기술을 가다듬고, 혹여 불이 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을 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난달 인천 한 아파트에서 난 화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다소 어긋나 있다고 본다. 사고로 거처에서 지낼 수 없게 된 아파트 주민이나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보유자가 본 직간접적인 피해, 손해는 안타까운 일이다. 대중의 질책이 매섭다 여겼는지, 최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전기차를 국내에 판매한 회사는 주민을 위해 45억원을 내놓은 데 이어 사고로 차를 못 쓰는 주민에게 1년간 차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다만 사고 원인을 둘러싼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특정 업체의 전기차나 배터리가 이번 사고의 원인인 듯한 인식은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그릇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은 고도로 발전해 상향 평준화된 분야로 꼽힌다. 100년 넘게 만들며 가다듬은 덕분이다. 반면 전기차 핵심부품으로 꼽는 배터리는 이제 막 첫발을 떼는 단계에 가깝다. 업력 1, 2년 차이가 업계 내에서도 큰 차이를 가지며 그로 인해 특허, 기술력도 회사마다 편차가 크다. 규모가 큰 회사,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회사의 배터리를 쓰는 걸 더 낫다고 여기는 인식은 그래서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배터리 공급업체를 알게 된 것만으로 전기차 화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화재 대처 역량이 올라갔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사고 원인을 차량 혹은 배터리 공급업체로 좁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설령 그 방향이 맞는다면 벤츠가 어떤 부분에서 차를 잘못 만들었는지, 해당 배터리가 어떤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제작사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직접 살펴봐서 분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창 불이 났던 현대차 코나 전기차도 화재 원인을 ‘추정’하기까지만도 수년이 걸렸다.
대처법을 키울 때도 방향이 중요하다. 서울시가 이번 사고 후 일주일 만에 내놓은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제한을 두고 대다수 전문가가 비판하는 것도 당초 분석이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차량의 수명관리 차원에서 일정 기준 이하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건 기존에도 권장했던 내용이다. 다만 그러한 점을 강제할 것이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서울시는 최근 소방차 진입이 수월하도록 전기차 충전소를 지하 주차장 최상층에 두도록 하거나 주차장 충전소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CCTV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런 게 상식에 가까운 접근일 테다.
무수한 전기차 화재,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내연기관차 화재를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다. 앞으로 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여태껏 만들어온 걸 안전하게 쓰는 법, 그리고 만에 하나 불이 나더라도 안전하게 대처하는 방식을 연마하는 건 더 중요한 일이다. 초기 진압이 잘됐거나 방화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큰불로 번지지 않은 사례를 우리는 자주 봐왔다.
산업IT부 차장 최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