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지난달 4일(현지시간)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성조기를 손에 든 채 서핑 보드를 타는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습니다. 저커버그 CEO가 즐기는 서핑 보드는 하이드로포일(Hydrofoil·수중익) 보드인데, 보드 밑바닥에 물살을 가르는 날개가 달려 마치 공중 부양하듯이 물을 떠다닐 수 있는 물건입니다.
수중익이 달린 서핑 보드는 물과의 저항을 최소화해 속도를 끌어 올립니다. 이런 디자인은 초호화 슈퍼요트나 경주용 요트, 보드 따위에 주로 달리고 저커버그 CEO도 수중익 보드 마니아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부자들의 취미용 장난감 정도로나 유용한 줄 알았던 수중익이 어쩌면 지구를 구원할 '게임 체인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수중익을 이용한 청정에너지 기업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화제가 된 이 회사의 이름은 드리프트 에너지(Drift Energy)라는 스타트업으로, 2021년 탄생한 신생 기업입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로부터 혁신 기금을 지원받고, 세계 최대의 재생 에너지 기업인 '옥토퍼스 에너지'의 벤처 사업부의 투자를 받는 등 벌써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수중익이 달린 15톤(t)짜리 요트를 만듭니다. 요트는 배수량 대비 표면적을 넓힐 수 있는 디자인인 '카타마란' 형식이며, 갑판 위에 달린 돛대와 선미의 작은 터빈으로 동력을 얻지요. 선체 중앙에는 태양광 패널도 배치해서 추가 전력도 생산 가능합니다.
요트의 선체 밑바닥에는 수중익이 달려 있습니다. 덕분에 십수t짜리 물체가 최소한의 동력만으로도 민첩하게 바다 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요트는 태양광·풍력·조력 등으로부터 얻는 운동 에너지가 이동하는 데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끊임없이 바다 위를 이동하는 발전기인 셈입니다.
요트가 얻은 동력은 수소의 형태로 컨테이너형 장치에 저장됩니다. 또 요트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끊임없이 파도·바람·태양광이 가장 풍부한 지점을 찾아 이동하며, 수소가 박스에 다 채워지면 자동으로 근처 항구로 돌아와 박스를 내려놓습니다. 드리프트 에너지는 이런 방식으로 언젠가 수소 연료를 상용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드리프트 에너지의 발상, 즉 '바다 위에 떠 있으며 움직이기까지 하는 발전원'은 풍력 발전보다 훨씬 비용 효율적입니다. 원래 풍력 터빈은 바다에 가까운 곳에 설치할수록 발전 효율이 높아집니다. 바다는 육지와 달리 장애물이 없어 바람의 세기가 더 강하고 일정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바다 위에 모노파일을 고정해 터빈을 설치하는 건 매우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육지와 발전 단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송전망 길이도 늘어나므로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오늘날 풍력 터빈 대다수가 땅 위, 혹은 아주 얕은 바다에만 설치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수중익선을 이용한 에너지 포집 방식은 이런 기반 시설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데다, 육지보다 훨씬 풍부한 바다의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 있습니다. 또 수중익선은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매우 적기 때문에 언제나 바람이 더 많이 부는 곳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이점입니다. 풍력 발전 단지의 치명적인 단점은 매일 바람의 강도, 빈도를 추정할 수 없다 보니 발전량도 불안정하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취미의 영역에 불과했던 수중익 기술을 드디어 산업 영역에 접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수중익은 19세기 중반에 발명돼 한때는 인류의 항해 기술을 끌어올릴 수단으로 기대받았지만, 활용처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수중익이 달린 배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해 잔잔한 바다 위만 항해할 수 있고, 한 번에 운송 가능한 화물 중량도 제한됐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수중익은 익스트림 스포츠나 럭셔리 요트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주용 요트 대회인 '아메리카스 컵'에선 온갖 기이한 수중익을 탑재한 요트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 요트의 속도를 최대로 끌어 올리면서 필요한 에너지는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들입니다.
어쩌면 수중익이라는 물건이 발명 후 150여년 만에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