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기자
인공지능(AI)에 투자하는 핵심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일단락되면서 AI 투자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확신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GPU '블랙웰(Blackwell) 출시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국내 반도체기업들의 수혜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실적발표 후 애널리스트들과 질의응답에 나선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추론 프로젝트에 필요한 능력을 확보하는 데까지 소요되는 긴 시간을 고려할 때 필요한 역량을 사전에 구축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AI 학습이나 추론에 필요한 엔비디아의 GPU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저커버그는 "앞으로 필요한 데이터센터와 컴퓨터의 규모를 추산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앞서도 올해 말까지 엔비디아의 GPU를 35만개 추가로 구입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메타는 총 60만개의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게 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최근 저커버그와 대담하며 메타가 60만개의 엔비디아 GPU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저커버그의 언급은 앞서 실적을 발표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다르지 않다. 이들 기업 모두 AI 투자에 대한 수익성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선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가 "투자하지 않는 위험이 투자하는 위험보다 더 크다"고 말한 것은 AI 투자에 뒤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는 예다.
MS의 2분기 클라우드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소식이 AI 반도체 기업의 주가를 강타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MS의 자본지출은 75%나 증가했으며 내년 증가율은 더 높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메타에 앞서 실적을 발표한 AMD의 상황도 AI 투자에 대한 불안감을 희석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리자 수 AMD CEO는 MI300 GPU 분기 매출이 처음 10억달러를 돌파했음을 공개했다. 수는 올해 연간 GPU 매출 전망도 기존 40억달러에서 늘어난 45억달러로 확대해 제시했다.
AI 지출 확대에 대한 기대는 엔비디아 주가를 재차 끌어올렸다. AI 투자 축소 우려와 애플이 AI 학습에 구글의 칩을 사용했다는 소식에 크게 하락했던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정규거래에서 12% 오른 데 이어 시간 외 거래에서도 3%나 더 올랐다. 경쟁사 AMD의 실적에 이어 메타의 실적이 연이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질 루니아 DA데이비슨 소프트웨어 담당 애널리스트는 "MS의 투자 계획은 당분간 MS 주주의 이익이 엔비디아 주주의 이익으로 이전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신 블랙웰 칩의 엔지니어링 샘플을 이번 주 중으로 고객들에게 전달한다고 말해 대규모 신규 수요 발생에 대한 기대도 불러오고 있다. 블랙웰은 기존 H100, H200 칩의 기반인 호퍼 아키텍처에서 진화한 최신 제품이다. 성능은 약 30배정도 증가한다. 필요한 HBM 메모리도 양도 늘어난다. 엔비디아가 하이닉스 외에 삼성전자의 메모리를 필요로한 이유다.
블랙웰은 가격도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36개의 블랙웰을 사용한 NVL36 서버랙이 약 200만달러, 72개의 블랙웰을 사용한 NVL72가 300만달러에 판매될 것으로 추산했다. 젠슨 황은 주주총회에서 블랙웰이 엔비디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블랙웰은 연말부터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은 내년 중 블랙웰을 통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할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