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석기자
지난 3일 채상병특검법이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자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야당 의원들에게 물었다.
"지금의 국회의원이 의원님들께서 다짐했던 의정활동 모습이 맞습니까? 국민께 이렇게 22대 국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떳떳이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민주당 이름 앞에 ‘더불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습니까?"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당당하게 "네"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었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며 던진 질문이 아니었지만, 대답에는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다. 본회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야당의 일방적 의사진행을 꾸짖고 성찰을 촉구하려 했지만, 너무나도 당당한 야당 의원들의 반응에 배 의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채상병특검법 무제한 토론 초반부 취재 과정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충격을 받았었다. 국회의원이 되고서 한 달이 지나도록 ‘선서’도 못 한 채, 야당의 일방적인 독주 모습만 보였던 민주당에서 어떻게 저런 당당함이 나올 수 있었을까.
22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민주당은 거침없는 모습을 보인다. 총선 민의를 앞세운 민주당은 '의회주의' '협치'라는 가치에 더는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최악의 국회라 불렸던 21대 국회에서 배운 유일한 교훈은 '의회의 관례나 여야 간 합의 존중과 같은 가치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인 양 질주했다. 오로지 야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옳다’는 자기 확신은 대여 ‘투쟁’에서만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국회의원의 기본 소양이 돼야 했다. 곽상언 민주당 의원은 4명의 검사 탄핵소추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는 것과 관련해 3명에 대해서는 찬성했지만 1명의 경우 제안 설명만 듣고 탄핵 찬반을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해 기권했다. 최종 탄핵도 아닌 만큼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이후 그는 '검사의 부당한 수사와 탄압을 오랜 기간 직접 몸으로 겪은 당사자' '명확한 사유가 있는 검사에 대한 탄핵은 두말할 필요 없이 찬성할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음에도, 집단 린치에 가까운 비판을 당내에서 받았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국회법이 설 곳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전당대회를 치렀을 당시 민주당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절대 선이라고 하는 오만과 독선에 빠졌다"는 자성이 나왔었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임대차 3법과 타다금지법, 검수완박법 등 입법 드라이브를 걸어 처리했지만, 참담한 결과만을 가져왔던 법들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반성은 사라졌다. 대신 ‘우리는 옳다’를 넘어선 확신이 요구되고 있다.
민주당의 공식 당명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더불어’의 연원으로 알려진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떨리는 지남철’이라는 글을 종종 인용하며 지식인의 자기반성을 강조했다. 이 글은 '만약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맺는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자기 점검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옳은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경고다. 궁금하다. 진심으로 출마를 결심했을 당시 생각했던 의정활동을 지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