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3>

편집자주기업들이 '호칭 통일'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급과 무관하게 인턴사원부터 경영진까지 서로의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업종의 특성과 기존 조직문화에 따라 이름 대신 별명이나 영어 이름을 쓰거나, 직급에 따라 차이를 두되 두세 단계로 제한하는 등 가이드라인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도대체 부르는 말이 뭐라고 많은 기업이 여기에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신지영 교수는 "기업에서 한 개인을 '○대리님' '○부장님'이 아닌 '○○○님'이라 부르는 건 수평적인 조직체계를 정립하려는 것 외에,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에 주목하려는 노력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 교수는 또 "말의 변화만으로 직장 문화가 변화할 수는 없지만, 말의 변화 없이 직장 문화의 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글자 수 970자.

호칭의 변화가 이런 큰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한국어가 지니는 특징 때문이다. 한국어의 특징을 이해해야만, 그래서 한국어에서 호칭이 갖는 의미를 이해해야만 구성원들이 엄청난 불편함을 감수하고 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호칭 제도 변화를 도입한 기업들은 구성원들에게 호칭이 갖는 사회언어학적인 의미를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호칭 제도가 잘 정착된 경우도 있지만, 일부 기업들은 변화를 시도했다가 다시 과거의 호칭 체계로 되돌아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어떤 특징이 호칭과 관련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2인칭 대명사의 특징적인 사용 양상이다. 한국어는 '너를 너라고 하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다. 한국어는 공손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너'나 '당신' 같은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 유형에 속한다. 대화 상대가 누구든 2인칭 대명사인 'you'를 사용할 수 있는 영어와는 사뭇 다르다. 영어 사용자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할머니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상사에게도 'you'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 중에는 한국어와 같은 유형이 매우 드물고, 영어와 같은 유형이 일반적이다.

(중략)

그럼 이름으로 상대를 칭하면 어떨까? 한국 문화에서는 상대를 이름만으로 칭하는 것 역시 공손함을 드러내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름을 안다고 처음 만난 사람을 이름으로만 칭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너'나 '당신'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2인칭 대명사로 칭하는 것과 똑같이 이름만으로 상대를 칭하는 것 또한, '나는 당신이 공손함을 드러낼 대상이 아니라 생각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된다. 이름만으로 상대를 칭할 수 있는 관계라면 '너'라고도 칭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너'나 '당신'이라고도 칭할 수 없고, 이름으로도 칭할 수 없으니 별도의 말이 필요한 것이다. 그 별도의 말이 호칭어와 지칭어다. 한국어에 다양한 호칭어와 지칭어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지영,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 인플루엔셜, 1만8000원

산업IT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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