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기업이 든 자리 난 자리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충남 당진은 부산에서 이사오는 YK스틸이라는 기업이 화제다. 지역에서는 "국내 굴지의 철강기업이 석문국가산업단지로 일자리 750개를 갖고 온다. 연봉수준도 상당하다"면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1958년 극동철강공업으로 출발한 YK스틸은 1966년 부산 사하구 부지로 공장을 이전한 이후 60여년간 부산의 터줏대감이었다. 2023년 기준 매출 6100억원에 영업이익 350억원, 직원 수 360여명의 건실한 회사다. 이 회사가 부산을 떠나게 된 것은 공장 주변에 아파트, 상가, 학교 등이 들어선 이후 분진, 소음 등 각종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굴러온 아파트가 박힌 공장을 내쫓는다"는 말이 회자됐다. 주민 일부는 "인구소멸과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은 부산에서 기업이 떠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충남 보령은 지역 내 가장 큰 매출을 자동차부품업체의 이사로 논란이다. 보령 관창산업단지에 입주한 매출 1000억원대 회사는 컨베이어 설비를 스마트팜에 적용하는 새로운 공법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자동차 관련 산업단지에 있는 이 업체가 스마트팜 시설을 운영한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보령시는 시설 철거 명령을 내렸다. 업체 대표는 대전MBC에 "시장이 왔을 때 구두로 물어봤고 시청 공무원들이 왔을 때도 수차례 물어봤다"고 토로했다. 결국 장기간 송사에 지쳐 대전시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2026년까지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경기 하남시는 전체 면적의 80% 가까이가 그린벨트이고 크고 작은 공장이 난립한 곳이었다.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2000년 12만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3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2020년 기준)은 2671만원. 경기도 평균(3652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칫하면 자족기능이 없는 심각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처지였다. 하남시는 기업지원과 투자유치로 구분된 기존의 조례를 하나의 조례로 통폐합해 지난해 ‘하남시 기업 투자유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인센티브부터 보조금, 주택공급까지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첫 결실로 중견건설사 서희건설이 본사 소재지를 성남시 분당구에서 하남시로 옮겼다. 서희건설의 작년 매출(별도 기준)은 1조4151억원, 영업이익은 2263억원, 당기순이익은 1577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직원은 823명이다. ‘맘스터치’ 창업주 정현식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협회장은 하남에 본부 사무실을 매입했고 BC카드는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기로 했다. 유명 골프장비 브랜드인 ‘PXG’의 ㈜카네도 연말 R&D센터를 준공한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최원석 BC카드 대표, 장지연 ㈜카네 부회장 등은 지난 4일 이현재 하남시장이 주최한 취임 2주년 토크콘서트에 초대받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들어온 사람은 티가 안 나지만 나간 사람의 빈 자리는 크다는 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 ‘자리’는 고용창출과 세수확보의 직접적 효과를 넘어서 도시의 존립과 직결되는 자리다. 기업 유치만큼이나 기업 유지(존치)도 중요하다. 갈등예방과 갈등조정에 실패하면 기업은 저절로 굴러오지도, 박힌 기업은 마냥 박혀있지도 않는다.

이슈&트렌드팀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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