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야! 식물원이네, 식물원이야."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진풍경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의원회관이 말 그대로 푸르른 숲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출입증을 찍는 입구 양옆은 알록달록한 꽃들로 가득 한 화분과 기세 좋게 뻗어있는 난초로 가득했다. 건물 끝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 길목과 의원회관에 방문한 사람들이 방문신청서를 쓰는 작성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화분의 꽃잎을 만지면서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화분의 주인을 알려주는 벽보를 보고 곧바로 지나쳤다. "난 화분은 각 의원실로 배송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30일 22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면서 의원들이 사무실로 쓰는 의원회관으로 축하 화분이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어림잡아도 몇백개에 달하는 화분이 보안 문제로 직접 의원실까지 전달되지 않고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회 직원들은 화분을 정리하기 위해 의원회관 1층 로비에 3~10층별로 의원실 앞으로 온 화분을 줄지어 놓았다. 그래도 감당하질 못해 화분이 로비를 넘어 건물 밖에 놓이기도 했다.
의원실마다 100개가 넘는 축하 화분이 들어온다고 한다. 국회의원 한 명당 축하 화분 100개만 들어온다고 쳐도 의원회관에 3만개의 화분이 도착하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개원 후 국회의원의 보좌관, 비서관들의 주요 업무는 1층으로 내려가 화분을 가져오는 것이다. 의원회관 1층에서는 초록색 짐수레를 끌고 국회의원의 이름이 적힌 화분을 찾는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의원실로 화분을 들고 가도 문제다. 화분 10개 정도를 책상이나 찬장 위에 두면 의원실 내 빈 곳이 가득 찬다. 애물단지가 된 난초가 죽지 않게끔 꾸준히 물을 주고 햇빛을 쐬게 하는 것도 보좌관이나 비서관에게 추가된 업무다. 일부 의원은 보좌관이나 비서관뿐만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화분을 가져가면 안 되겠냐며 토로했다고 한다.
이 많은 축하 화분은 어디서 온 것일까. 누가 보낸 것일까.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대기업, 증권사, 지방자치단체장, 지역 시·도의원, 지역에 있는 여러 협회, 대학 총동창회, 대학 교수, 종교단체 등의 리본이 보였다. 심지어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축하 화분도 있었다.
"이번이 유독 과합니다." 4선 의원의 한 비서관은 올해만큼 축하 화분이 눈에 띈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 어느 때보다 화분이 많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성인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큰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크고 화려한 화분을 보내면 누가 보냈는지 눈이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화분들은 뇌물과 관련은 없을까.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 의례,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화환을 포함한 농수산물의 경우 10만원 이내까지 선물할 수 있다. 10만원 이내의 화분을 주고받는 건 뇌물 등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다만 누가 봐도 고가의 화분도 존재했다. 한 의원실로는 천장에 닿을 만큼의 크기를 자랑하는 여인초가 배달됐다. 150cm 이상의 축하용 대형 여인초는 싸게는 10만원대, 비싸게는 35만원대로 판매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의 B 보좌관은 "국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어떤 분은 축하 화분으로 국회가 뒤덮이는 게 이상하다고 하는 반면, 크게 보면 불법도 아닌데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각 정부기관이 눈치 싸움하듯 화분을 보내는 건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C 초선 의원은 지난 4월 당선과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 꽃을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화분 100개가 의원실로 배달됐지만, 그는 "선방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당부조차 안 했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화분이 의원실에 왔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C 의원은 축하하고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간소하게 축하를 전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국회의원 300명에게 일괄적으로 화분을 보내는 곳을 보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C 의원은 '어떻게 축하를 받고 싶냐'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을 내놓았다. "저는 편지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