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시중은행의 각종 대출 허들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핀테크(금융+기술)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신용평점 관리 서비스, 3고(高) 위기를 맞아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신용사면 등의 영향으로 '신용 점수 인플레이션'이 확산한 결과다.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신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가 고신용자로 분류되는 1~2등급 수준까지 상승한 가운데, 높아진 문턱을 넘지 못한 금융소비자들은 신용카드사의 장기카드대출(카드론) 등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4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 4월 취급한 신용대출의 평균 신용등급은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926.2점(914~940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917.6점) 대비론 약 9점, 올 1월 말(915.2점) 대비론 10점 이상 상승한 수치다.
특히 일부 은행은 평균 신용점수가 940점에 달해 KCB가 1등급 고신용자로 분류하는 941~1000점 수준에 육박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시중은행만의 일은 아니다.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케이·토스뱅크) 3사의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도 지난 1월 893.6점에서 4월 903.3점으로 약 10점 상승했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서조차 평균 신용점수대가 900점을 넘어선 것이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역시 유사한 흐름이다. 5대 시중은행이 지난 4월 신규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33.2점에 달했다. 올 1월 말(931.6점) 대비론 2.6점가량 높다. 일부 은행은 평균 신용점수가 944점에 달해 1등급(941~1000점)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 특성상 차주들의 신용점수가 높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맞지만 추세적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최근 각종 핀테크 애플리케이션(앱)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용등급 관리 서비스의 영향을 꼽는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각 핀테크 앱에서 신용등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팁(tip) 등을 제시하면서 개개인이 손쉽게 신용점수를 관리하는 분위기"라며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엄격히 한다기보다는 전반적인 신용점수가 올랐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했다.
정부가 단행한 대규모 신용사면의 영향을 꼽기도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피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2021년 신용사면을 단행했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3고 위기 등을 명목으로 올해 대규모 신용사면을 진행한 바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 사면대상이 된 인원은 285만8000여명에 달했다.
이 영향으로 전반적인 신용점수는 상승추세다. KCB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평가 대상 4953만3733명 중에서 신용점수 900점을 넘은 비중은 43.4%(2149만3046명)에 달했다. 신용점수 950점이 넘는 초고신용자 역시 1314만653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론 약 147만명, 2020년 대비론 약 325만명 늘었다.
이렇듯 전반적인 신용평점이 상승하면서 '풍선효과'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신용점수 허들이 높아지면서 2금융권으로 시선을 돌리는 급전 수요들이 늘고 있다. 최근엔 실적 악화 추세인 저축은행들도 영업자산을 축소해 대응하고 있어, 서민의 급전 창구로 불리는 카드사의 카드론이 급격히 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국내 9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전년 대비 7.3% 늘어난 39조9644억원으로 약 40조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