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조유진기자
21대 국회가 종료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핵심 민생·경제 법안들이 대거 좌초됐다. 30일 시작된 22대 국회도 여소야대 지형에서 극한 정쟁 국면이 반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법안 통과에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와 여당이 민생법안부터 최우선 처리하고 야당도 이에 전향적인 태도로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계류 상태에 있던 총 1만6378개 법안이 21대 국회 폐원과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 가운데에는 민생·경제 현안들과 관련된 핵심 법안들이 상당수다. '채상병 특검' 정국에 막판까지 여야 간 정쟁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견해차가 크지 않은 민생법안들마저도 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줄폐기됐다.
대표적인 민생법안으로 10년 이상 된 노후차를 교체할 때 개별소비세를 70% 감면해주고, 올해 상반기 신용카드 사용 증가분의 소득공제율을 10%포인트 늘려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교착상태가 길어지며 결국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비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주택 과세 특례 등도 22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대부분이 정부가 올 초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한 대책들이다.
젊은층 맞벌이 부부들의 관심이 집중된 저출생 관련 대책도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부모의 육아휴직을 최대 3년까지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모성보호 3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 개정안·근로기준법)'이 대표적이다. 모성보호 3법은 부모가 자녀당 1년씩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을 자녀당 1년 6개월씩 최대 3년까지 쓸 수 있도록 늘리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대상 자녀연령을 기존 8세에서 12세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출생 문제 극복이 시급하다는 여야 공감대 속 무난한 합의 처리가 예상됐지만, 채상병 특검 정국 속 지난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회의에 불참하면서 국회 통과가 좌절됐다.
경제계의 주요 법안들도 답보상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담은 소득세법·조특법 개정안은 '부자감세' 프레임에 휘말리며 결국 좌초됐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높이는 'K칩스법'과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논의도 되지 못한 채 모두 폐기됐다. K칩스법은 반도체·이차전지·전기차·디스플레이 등 첨단 전략산업에 대한 국내 설비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세제혜택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기존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세액 공제율을 상향시켜 기한을 2030년 말까지 6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일몰기한 도래로 효력을 상실하기 전 연장을 위해서는 올해 안에 22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법안 접수부터 본회의 의결까지 소요 일정을 생각하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새로운 입법뿐 아니라 노동·연금·교육 등 이른바 3대 개혁 추진도 험로가 예상된다. 저출생·고령화로 기금이 빠르게 소진되며 기금 부실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국민연금 개혁안' 처리는 21대 국회에서 결국 불발됐다. 여야는 기금 고갈을 막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낮춰야 한다며 현재 9%인 보험료율 인상에 의견을 모으고 소득대체율에서도 견해차를 좁혔지만 끝내 불발됐다. 여당에서는 보험료율 조정 등 모수개혁만 갖고는 연금 기금 부실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고 새 판을 짜는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22대 국회에서도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당이 정쟁에 밀려 줄폐기된 민생·경제 법안부터 조속히 재발의해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 구성 협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앞으로 전국동시지방선거(2026년), 대통령선거(2027년), 국회의원선거(2028년)가 1년 단위로 예정돼 있어 여야가 법안 처리에 나설 추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소야대 국회라 해도 정국을 이끌어가는 것은 여당"이라며 "민생법안의 장기 표류를 막고 조속한 처리를 위해서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