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檢, 카카오 수사 서두르더니 재판은 느긋

지난해 카카오에 대한 수사 과정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온 국민에게 익숙한 두 기업(카카오, 하이브)이 에스엠(SM)을 놓고 지분싸움을 벌인 사실 자체만으로 화제성이 컸는데, 그 와중에 주가 시세조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금융감독원이 역사상 처음으로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포토라인'에 세우면서 언론의 관심도 집중됐다. 금감원은 서둘러 '패스트트랙(긴급조치)'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이첩했다. 검찰은 보름여 만에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전략대표를 전격 구속기소했다.

그런데 정작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 태도가 확 바뀌었다. 통상 재판에 돌입하면 피고인들이 고의로 지연전략을 펼쳐 문제가 되곤 하는데 카카오 사건은 반대다. 지난해 11월 구속기소 된 배 전 대표의 시세조종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핵심은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와의 '공모 여부'였다. 그런데 검찰 수사는 올해 들어서야 진행됐다. 검찰이 수사를 이유로 관련 증거기록 제출을 거듭 미뤄 재판은 사실상 수개월 공전했다. 변호인들은 '대체 언제 증거열람을 할 수 있냐'며 재촉했다. 그사이 배 전 대표는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지난 3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기소는 배 전 대표가 풀려난 지 한 달이나 뒤에야 이뤄졌다.

변호인은 물론 재판부도 답답해하는 모양새다. 카카오 사건 심리를 위해 신청된 증인만 25명 안팎인데 아직 2명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특히 꼭 신문을 필요로 하는 주요 증인 목록에는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이나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 등 수사선상에 함께 올랐던 인물도 있다. 재판부는 순차적으로 두 사람을 증인석에 앉히려 했으나 강 실장은 법원 소환장이 도착하기도 전에 '기소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출석 거부 의사를 표했다. 이 부문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담당 재판장은 앞선 공판기일에서 "검찰에서 가능하면 수사를 마치고 일괄 기소하는 게 피고인 방어나 재판에 바람직하다"면서 "(추가) 기소 여부를 신속히 결정할 것을 요청한다"고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검찰의 '살라미 기소' 탓에 대대적으로 시작됐던 카카오 사건 재판은 핵심 증거도 없이 양측의 지루한 공방전만 이어지고 있다. 조만간 서울남부지검 수사 지휘부가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변수다. 시끌벅적했던 시세조종 의혹 수사가 자칫 '용두사미'가 될까 우려된다.

사회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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