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주기자
세계 각국은 주요 산업의 공급망을 국내에 구축하거나 우방국 위주로 재편하려 애쓰고 있다. 풍력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요 국가들은 자국 해상풍력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장벽을 쌓고 있다. 지난해 국산화규정(LCR)을 폐지한 우리나라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LCR 규정을 만들었던 대만은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확대하기 위해 정부가 해상풍력을 육성하고 있다. 2020년 이후 2025년 완공 예정의 발전용량 5.4G기가와트(GW) 규모 해상풍력 단지가 건설 중이다. 이후 2035년까지 15기가와트 규모의 단지 건설을 위한 제작사 선정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보다 시작이 늦었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다. 정부가 계획에 맞춰 개발사를 선정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을 위한 '원스톱샵' 마련 등을 통해 개발기간 최소화를 추진한 결과다.
대만은 2026년부터 해상풍력 5개 분야의 25개 핵심 항목을 국산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국산화 비율이 60% 이상인 프로젝트만 정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초과분은 가산점으로 계산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다만 몇 년 안에 모든 분야를 국산화하기란 불가능하므로 풍력발전기, 기어박스, 부유체, 변전소 전장부품 등은 최소 비율에 포함하지 않고 가산점만 부여하도록 했다.
일본 역시 민간주도 해상풍력 경매를 240점 만점의 평가 기준체계로 운영 중이다. 안정적 전력공급과 미래 가격 저감 항목에 10점을 배점, 부품 조달 및 수리 부분에서 국내 공급망을 형성한 사업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사실상 일본 부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미국은 세액공제를 활용해 공급망 강화에 나서고 있다. 투자세액공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 내 풍력발전단지에 투자한 금액의 30%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여기에 미국 내 부품 생산 비율이 육상 40%, 해상 20%를 넘으면 추가 10%, 낙후지역에 발전단지를 건설하면 다시 추가로 1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생산세액공제는 부품생산자에게 세액을 공제해 주는 제도다. 2029년까지는 100%를, 그 이후는 매년 25%씩 차감해 2032년까지 공제가 유지된다. 둘 다 미국 내 풍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다.
유럽에선 영국이 풍력 산업 후발주자로 꼽힌다. 하지만 빠르게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영국 풍력에너지 연합단체 '영국 리뉴어블'의 '에너지펄스'에 따르면 영국은 2010년부터 해상풍력 산업을 꾸준히 지원한 결과, 현재 관련 발전설비 설치량 기준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해상풍력 산업에 처음 뛰어들 당시 영국에는 풍력발전용 터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부품 생산 기업도 없었다. 영국은 차액결재거래(CFD) 시 지원을 받으려면 공급망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해 해외 기업들이 영국 내에 공장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 결과 독일의 다국적 기술기업 지멘스가 풍력 터빈 및 블레이드 공장을, 한국의 씨에스윈드와 세아제강이 각각 타워와 모노파일 공장을 영국에 신설했다. 또 영국은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동시에 자국 기업들의 해상풍력 산업 진출을 적극 지원해 BP, 서브시7, 텍마르, 제피르 등의 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풍력 산업 전문가는 "특정 국가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공급망은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가격지표의 하한가 설정, 자격·가격 평가의 분리 등 입찰 제도 개선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