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카피캣' 중국의 프리미엄 가전 공습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건 삼성, LG보다 중국 가전이었다. 중국 하이얼은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내놓은 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기술력을 갖춘 AI 가전을 선보이거나 국내 업체들 라인업엔 없는 제품까지 전시하며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하이얼 부스를 바라본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이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

유럽 빌트인 시장에서 중국의 부상은 의미가 남다르다. 포화 상태에 이른 일반가전 시장과 달리 빌트인은 주로 패키지 상품으로 구성돼 잠재력이 높다. 일반 가전과 비교해 수익성이 훨씬 높아 글로벌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영역이다. 유럽은 빌트인 시장의 본고장으로, 글로벌에서 42%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

비유럽 브랜드에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 진입장벽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시장은 높아진 기술력과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급격한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장에서도 하이얼은 시장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인수한 이탈리아 스마트 키친 브랜드 캔디의 전시관을 하이얼 부스 바로 옆에 꾸리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묶어뒀다.

전시장을 찾은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 역시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1번 경쟁자는 중국 업체, 그중에서도 하이얼"이라며 "과거 우리가 했던 성공 방정식을 상당히 많이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가전 업계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기술력을 앞세워 프리미엄 전략으로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은 중국 가전 업계 앞에서 무용지물이 됐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쇼 CES에서도 중국 TCL은 삼성전자와 LG전자보다 큰 115인치 '퀀텀닷 미니LED' TV를 전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의 공세를 막기 위해 보급형 저가 시장에 다시 뛰어드는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카피캣(모방제품)으로 성장한 중국 기업들의 성공 공식은 과거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삼성, LG도 과거 모방을 통해 성장한 후 시장 리더가 됐다. 중국도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힘든 건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종 기업 간 협업 등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절실해진 디자인 위크였다.

산업IT부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