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 놓인 종이컵 유독물질 마시고 뇌사…회사 관계자 '유죄'

지난해 6월 물로 오인해 마신 직원 뇌사
종이컵에 담은 직원, 징역 10개월·집유 2년
재판부 "유독물질 표시 안 해 과실 인정"

지난해 6월 경기 동두천시의 한 중견기업에서 종이컵에 담긴 유독물질을 마신 30대 여성 근로자가 뇌사 상태에 빠진 사건과 관련해 회사 관계자들이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1일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정서현 판사)은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또 A씨의 상사인 B씨에게는 벌금 800만원,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벌금 2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의정부지방법원[사진출처=연합뉴스]

A씨는 지난해 6월 28일 회사 실험실에서 광학렌즈 관련 물질을 검사하기 위해 불산을 포함한 유독성 화학물질이 든 종이컵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당시 A씨 옆에서 현미경으로 검사를 하던 30대 여직원 C씨는 본인 오른손이 닿는 위치에서 종이컵을 발견하고 투명 액체라 이를 물이라고 생각해 마셨다.

C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회사 측에선 해당 물질에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재빠르게 파악을 못 해 인공심폐장치(에크모·ECMO)와 투석 치료 등이 곧바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후 C씨는 맥박과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도 뇌사 상태에 빠져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상태다.

수사 결과 회사 관계자들이 C씨를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유독물질임을 표시하지 않은 데다 적절한 용기에 담지 않았던 점으로 봐 회사 측 과실이 인정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2일 열린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장기간에 걸쳐 유해 화학물질 관리를 소홀히 해 피해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중상해를 입혔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C씨의 남편은 재판장에게 발언 기회를 얻어 "아내가 여전히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다"며 "저와 7살 딸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 사고는 결코 단순한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누구 것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마신 피해자의 실수를 탓하는 인터넷 댓글들이 좀 달린 걸로 알고 있다"며 "그 실수를 탓하기에는 사고가 발생한 실험실은 피해자의 팀에서 주로 사용하는 곳이고, 피고인은 거의 가지 않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 피해자가 종이컵에 물을 담아 마시며, 사고 당시 손 닿는 거리에 놓인 종이컵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 피고인의 과실이 훨씬 중대하다"면서 "더구나 회사는 화학물질 성분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병원에 간 피해자가 적절한 조치를 빠르게 받지 못해, 그 잘못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양형 이유에 대해 "다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 대신 피해자의 배우자에게 사죄하고 피해 보상을 해 합의한 점, 회사가 피해자의 치료비 등 지원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슈&트렌드팀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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