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폐지된 뉴질랜드 금연법 벤치마킹
존슨 전 총리"시가 금지는 미친 일"
수낵 정부, 폐암 등 4만7000건 예방 기대

'비흡연 세대 법'은 담배를 살 수 있는 연령이 해마다 1년씩 상향 조정돼 2009년 1월 1일 출생자(현재 15세)부터는 평생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담배를 구입할 수 없도록 한 '담배 및 전자담배 법안'의 별칭이다.

영국 정부는 오는 2027년 이 법의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국은 법정 연령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담배를 판매한 상점에 100파운드(약 17만원)의 벌금을 현장에서 부과하고, 전자담배의 경우도 일회용 제품은 금지하고 청소년이 좋아할 만한 향이나 포장, 판매 방식을 제한하는 조항도 법안에 담았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담배. [사진=연합뉴스]

2050년 40세도 담배 못 사고, 50년 뒤 63세 이상만 구매 가능

이 법안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꼽힌 뉴질랜드의 '금연 환경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2022년 12월 2009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담배를 살 수 없는 금연 환경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2023년부터 2009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에게는 담배판매가 금지되고, 이를 어기면 최대 15만 뉴질랜드달러(약 1억2523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2023년 말까지 담배를 판매할 수 있는 소매점 수를 현재 약 6000개에서 10분의 1인 600개로 줄이고,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허용치도 감축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연령이 아니라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담배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50년이 되면 40세도 담배를 살 수 없게 되고, 50년 뒤에는 63세 이상만 담배를 살 수 있게 된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금연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호주와 영국 등이 '담배금지법'을 추진하는 데 일조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아이샤 베럴 뉴질랜드 연구과학혁신부 장관 겸 보건부 차관은 당시 "담배 없는 미래를 향한 한 걸음 진전"이라면서 "수천 명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보건 시스템이 암, 심장마비, 뇌졸중과 같은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수십억 달러를 절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정권이 교체되면서 뉴질랜드 금연 환경법안은 폐지 수순을 밟았고, 올해 초 결국 폐기했다. 정권 교체로 연정을 꾸려야 했던 다수당인 국민당은 금연 환경법 폐지를 주장했던 뉴질랜드 제 1당과의 협상에 이 법안 폐지를 조건으로 걸었고 연정에 성공하면서 법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뉴질랜드 국민 60%는 폐지 반대…英 "통과 늦춰질 것"

여론은 금연 환경법 폐지에 부정적이다. 이달 뉴질랜드 매체 원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질랜드 시민의 60%가 '금연 환경법을 폐지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영국은 뉴질랜드와 달리 수많은 수정을 통해 법안 통과 시기를 최대한 늦출 것으로 보인다. 영국 하원은 16일(현지시간) 오후 비흡연 세대 법에 대한 2차 독회에서 찬성 383표 대 반대 67표로 법안을 하원 심사의 다음 단계로 넘겼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사진=AFP/연합뉴스]

의회의 1차 관문을 통과했지만, 집권 여당인 보수당은 물론 내각에서도 반대하는 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보수당 의원 57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기권한 보수당 의원도 106명에 달했다. 케미 베이드녹 산업부 장관도 이 법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며, 법 집행 부담이 민간 사업체에 전가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시가 애호가였던) 윈스턴 처칠의 당이 시가를 금지하다니 미친 일"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리시 수낵 정부는 이번 법 제정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비흡연 세대를 만들면 금세기 말까지 심장질환과 폐암 등 4만7000건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영국의 흡연자는 인구의 약 13%인 640만명이며, 해마다 8만명이 흡연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다.

비흡연 세대 법은 앞으로 위원회 심사와 전체 회의 보고, 3차 독회를 거쳐 하원을 최종 통과하면 상원으로 이송된다. 상원 최종 표결은 6월 중순이 될 전망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수당 내 반대파가 법안 심사 과정에 많은 수정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통과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정치부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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