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환기자
정부가 "27년 만에 확대하는 의대 정원은 의료 정상화를 시작하는 필요조건"이라며 의대 증원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의대 증원을 위한 대학별 교육 여건 개선 수요조사에도 착수한 가운데 "의료개혁은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면서 의료진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며 정부와의 대화도 촉구했다.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2차장을 맡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 앞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범정부적으로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 중증환자와 응급환자 중심의 비상진료체계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이 장관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필요조건'이라 강조하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은 3.7명인데 우리나라 17개 시도 중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93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령화 추세에 따라 세계 각국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꾸준히 늘려왔다"며 "미국은 지난 20여년간 입학 정원을 7000명 늘렸고 프랑스는 6150명, 일본은 1759명 늘렸다"고 부연했다.
의료개혁을 위한 세부책 추진도 약속했다. 이 장관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를 도입하고 장학금·수련비용 지원과 함께 정주여건도 개선해 경쟁력 있는 지역 의료인력을 확충하겠다"며 "2027년까지 국립대의 의대 교수 1000명 증원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필요한 교육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교원 증원과 교육·실습 시설 확충 등에 대한 대학별 수요조사에 착수한 점도 설명했다. 이 장관은 "어제 의대 교육지원 TF 2차 회의를 통해 대학별로 교원 증원 등 8개 분야에 대한 대학별 수요조사를 시작했다"며 "각 대학 수요를 적극 반영해 4월 중 의대 교육 여건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정부와의 대화도 촉구했다. 이 장관은 "의료계 관계자분들께서는 소모적인 갈등을 멈추고 건설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와 산적해 있는 의료현장의 난제들을 함께 풀고 의료 정상화 방안을 구체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함께해주시기 바란다"며 "의대 교수들께서는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설득해 주시고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날 정부는 의료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이번 사태를 다룰 '의정 협의체' 구성을 논의했지만 소득은 얻지 못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서울 종로 서울대 의대를 찾아 "이해 당사자들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이 건설적인 대화체를 구성해 서로 공감·이해하는 것을 (국민은)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의대 증원 규모 자체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추가로 파견한 공보의·군의관 200명의 근무를 이날부터 본격화하는 등 의료 공백 진화에 나섰다. 이들은 25~26일 이틀간 각 파견 의료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앞서 이달 11일 1차로 파견된 166명을 합치면 총 400여명이 넘는 군의관·공보의가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이들이 주말·야간 근무를 하게 되는 경우 특별활동지원비, 시간 외 수당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제대를 앞둔 군의관들의 상급종합병원 조기 복귀 허용도 추가하는 인력 확보 방안도 진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에 강경파 인사가 선출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새 의협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의 임기는 5월부터지만 이미 의협의 비상대책위원회를 직접 이끌고 있어 즉각적인 추가 투쟁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대화'를 촉구하는 정부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보건복지부의 조규홍 장관, 박민수 차관의 파면 등을 전제 조건으로 건 데다 "면허정지나 민·형사 소송 등으로 전공의, 의대생, 의대 교수 중 한 명이라도 다치면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