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기자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분 등 주요 밀가루 제조사들이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하는 취지로 소비자 판매용 제품 가격 인하에 나선다. 밀가루 제조의 원료가 되는 수입산 원맥 가격이 소폭 내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가장 먼저 인하 계획을 발표한 곳은 시장점유율 1위인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다음 달 1일부로 소비자 판매용 밀가루 제품 가격을 인하한다고 19일 밝혔다.
가격을 내리는 품목은 중력밀가루 1㎏, 2.5㎏ 제품과 부침용 밀가루 3㎏ 등 총 3종이다. 인하율은 대형마트 정상가격 기준으로 제품별 3.2~10% 수준이고 평균 인하율은 6.6%다.
CJ제일제당측은 "최근 국제 원맥 시세를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며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부침용 밀가루와 중력밀가루는 일반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품으로, 전체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판매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일부 밀가루 제품의 가격 인하를 결정한 배경에는 원재료인 원맥 가격이 고점 대비 하락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CJ제일제당이 수입한 원맥 가격은 t당 53만8000원으로 최대치를 찍었던 2022년 55만4000원 대비 3%가량 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링크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지난해 기준 국내 밀가루 제조사 가운데 시장점유율 58.81%로 1위다. 업계 선두 제조사의 가격 인하 방침에 경쟁사들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이미 삼양사와 대한제분이 소비자 판매용 밀가루 제품의 가격 인하 여부를 논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인하 발표 시점과 인하율 등 세부 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삼양사의 지난해 원맥 수입 가격은 t당 380달러로 전년(435달러) 대비 13%가량 감소했고, 같은 기간 대한제분의 원맥 수입 가격도 t당 52만8868원에서 50만6090원으로 소폭 내렸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3일 식품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에서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가격에 반영해 물가안정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에 설탕과 식용유 등 다른 품목도 원재료 가격이 내렸다는 점을 근거로 정부가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물가관계장관 회의'에서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했지만 밀가루·식용유 등 식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짚었다. 향후 밀가루 등의 가격 인하를 명분으로 라면이나 제과·제빵 등 이들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에 추가로 가격 인하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번 밀가루 가격 인하 대상에서 B2B(기업 간 거래) 제품은 제외됐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거래처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밀가루는 각 사마다 계약 시점과 조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가격을 조정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