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최근 저출산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 ‘저출산 해결의 걸림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공무원은 “돈 준다고 청년들이 애 낳는다는 생각부터 버려야죠”라고 답했다. 요새 ‘돈이 다가 아니다’는 말은 세종시 관료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다. 이제 40·50대 남성 고위 관료들도 ‘돈만 주면 출산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구시대적 발상인지 잘 안다. 정책 담당자들의 뿌리 깊은 통념이 바뀌었으니 고무적인 일이다.
관료들의 생각은 우리 국민이 바꿨다. 수많은 신혼부부와 20·30세대 청년들은 각종 간담회와 소셜 미디어에서 ‘돈, 돈, 돈’만 외쳤던 국가에 일침을 날렸다. 현장에 있었던 대통령, 총리, 장관, 간부급 공무원들 귀에 똑똑히 박혔을 것이다. 이 덕분에 ‘일·가정 양립’처럼 변두리에 있던 정책이 저출산 문제의 핵심 해법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관료들이 국민의 외침을 제멋대로 오해하기 시작했다. 돈 쓰는 정책이 저출산 극복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어버리는 식이다. 이러한 믿음은 훌륭한 변명거리가 됐다. 턱없이 부족한 저출산 예산과 찔끔찔끔 늘어나는 증가율도 ‘돈으로 해결 안 된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건전재정을 기조로 내세운 이번 정부에 방어 수단이 됐다.
국민들의 외침은 ‘돈 없어도 된다’가 아니었다. 돈을 쓰는 정책만큼 사회와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1억원을 손에 쥐여주기만 하면 저출산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질 거라는 철없는 생각을 꼬집기 위한 호통이었다. 예산을 과감히 투입했으면 정책을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돈 쓰는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200명 중 40%가 저출산 원인으로 경제적 부담 및 소득 양극화를 꼽았다. 두 번째로 많이 지목받았던 원인이 자녀 양육·교육에 대한 부담감(29.6%)이었다. 천문학적 돈을 쓰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저출산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15년간 우리 정부가 저출산에 쓴 돈은 380조원인데, 상당수가 저출산과 무관한 정책들로 평가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산한 가족지원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서는 33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다음 달이면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보하고, 예산 협상이 시작된다. 부처 간 치열한 예산 줄다리기가 펼쳐지는데 적어도 저출산 해법은 예외로 둬야 한다. 한국은 인구 소멸을 향해가는 국가다. 부영그룹 세제 혜택처럼 대통령과 온 사회가 집중하지 않아도 필요한 곳에는 돈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