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종기자
지난 21일 찾은 경북 포항 영일만 일반산업단지 내 에코프로 제4캠퍼스 공사 현장. 지난해 착공해 현재 터파기 및 철골 작업이 한창이었다. 약 5만평 규모의 4캠퍼스에는 에코프로BM,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에코프로CNG, 에코프로AP 등 에코프로 그룹의 이차전지 관련 계열사 4곳이 들어설 예정이다.
공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에코프로머티리얼즈 공장은 이미 철골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 4캠퍼스는 에코프로가 자랑하는 '클로즈드 루프 에코 시스템(Closed Loop Eco System)'이 그대로 적용된다.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은 폐배터리 재활용을 포함해 전구체, 수산화리튬 가공, 산소·질소 생산, 양극재 제조 등의 전 과정을 한 곳에 집적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인 생산 체계를 말한다.
에코프로는 이미 영일만 산업단지 1·2·3캠퍼스에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그 경험을 4캠퍼스뿐 아니라 포항 블루밸리 산업단지와 헝가리, 캐나다 등 해외 생산 시설에도 그대로 적용할 예정이다. 영일만의 에코프로 캠퍼스가 일종의 마더라인(mother line)인 셈이다.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의 시작은 사용후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계열사인 에코프로CNG에서 시작한다. 에코프로CNG에서는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리튬을 용매에 녹인 후 이를 배관을 이용해 바로 옆 건물인 에코프로이노베이션으로 이송한다.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은 이를 양극재 원료인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한다.
액화하기 어려운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원료는 가루 형태로 물류 차량을 이용해 전구체 생산 계열사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로 이송한다.
에코프로 측은 현재 양극재 원료의 약 5%를 리사이클을 거쳐 조달하고 있다. 앞으로 전기차에서 나온 사용후 배터리가 늘어날수록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에코프로는 양극재 소성 공정에서 필요한 산소와 질소는 계열사인 에코프로AP에서 생산한다. 3캠퍼스 내에는 '콜드박스(cold box)'라고 불리는 40m 높이의 대형 탑 2개가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공기를 빨아들여 각각 산소, 질소, 아르곤 가스를 추출한다. 이중 양극재 생산에 필요한 산소와 질소는 캠퍼스 지하에 매설된 배관을 통해 각 계열사로 보내준다. 생산 현장에서는 밸브만 열만 곧바로 산소와 질소를 사용할 수 있다. 아르곤 가스는 반도체 제조 관련 기업에 판매하고 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전구체 완제품을 생산하는 CPM 공정과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핵심 원료 물질을 가공하는 RMP 공정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두 생산 시설 역시 대형 파이프로 연결돼 있어 물류 및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추었다.
최종 양극재 제조 기업인 에코프로BM과 에코프로EM은 에코프로머티리얼즈로부터 전구체를, 에코프로이노베이션으로부터 수산화리튬을 각각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은 완성된다.
에코프로의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류 자동화와 스마트 팩토리다. 3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물류 창고에 들어서자 수십 미터 높이의 랙(선반) 위에 원재료, 반제품, 완제품 등이 색깔별로 구분된 톤백(tone bag)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생산 시설과 연결된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AGV(Automatic Guided Vehicle·자동 운반 로봇)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톤백들을 실어 날랐다. 이 톤백들은 다시 로봇 크레인에 의해 랙으로 이동하거나 AGV에 옮겨진다. 직원들은 모니터를 보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만 관리하면 된다. 에코프로는 이 시스템을 도입하며 물류에 필요한 인력을 감축하고 생산 효율성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충북 청주 오창에 본사를 둔 에코프로가 포항에 생산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은 미래 이차전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자신하고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 대규모 투자를 결심했다.
당시 사내에서는 이같은 대규모 투자에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임원들과 토론회에서 "앞으로 양극 소재만 생산해서는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배터리 소재에 들어가는 비용이 100이라면 우리가 적어도 60~70은 컨트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금 조달을 우려하는 임원들에 대해서는 "사업이 되면 돈은 따라오게 돼 있다"며 설득했다.
이 전 회장은 이 아이디어를 포항시에 제안한 뒤 영일만 프로젝트를 본격 시작했다. 이후 2023년까지 2조9000억원을 투자해 원료, 전구체, 양극재, 리사이클링까지 소재 전 분야에 걸친 가치 사슬을 구축할 수 있었다. 2025년 4캠퍼스까지 준공되면 영일만 산업단지 내 에코프로 캠퍼스는 15만평 규모로 확장된다.
에코프로가 포항에 구축한 '클로즈드 루프 에코 시스템'은 국내 경쟁 기업뿐 아니라 배터리 셀 기업, 해외 전기차 OEM 사들도 관심을 갖고 벤치마킹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을 앞으로 들어설 규모의 포항 블루밸리 산업단지에도 그대로 적용할 예정이다.
에코프로는 2028년까지 2조원 이상을 투자해 블루밸리 산업 단지 내에 21만평 규모의 이차전지 생산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계열사마다 3만평 이상의 부지를 확보할 예정이다. 원료, 전구체, 양극재, 리사이클링 등이 모두 들어서는 초대형 양극재 집적단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1998년 설립된 에코프로는 공장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를 흡착하는 제품 개발로 시작했다. 이후 제일모직과 함께 이차전지용 전해질 및 전구체 개발을 진행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본격적으로 이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제일모직으로부터 양극재 사업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에코프로는 초기에는 전구체 사업이 주력이었으나 중국이 저가 제품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양극재로 선회했다. 에코프로는 2013년 소니에 처음 양극재를 공급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삼성SDI, SK온 등 글로벌 배터리 셀 기업에 하이니켈 양극재를 공급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하이니켈 양극재 시장에서 에코프로는 6.6%의 점유율로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에코프로의 모태가 됐던 대기 환경 사업은 계열 분리를 통해 현재 에코프로HN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차전지 분야에서는 2016년 물적 분할을 통해 에코프로BM(양극재 )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에코프로 EM(삼성SDI용 양극재), 에코프로머티리얼즈(전구체), 에코프로이노베이션(수산화 리튬 가공), 에코프로CNG(리사이클), 에코프로AP(산소 및 질소 생산) 6개사가 진행한다.
에코프로는 2008년 3월 오창에 양극 소재 제1공장을 준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창에만 총 5개의 양극재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연간 3만 톤의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포항의 15만 톤과 합쳐 에코프로의 연간 양극재 생산 능력은 2023년 기준 18만 톤에 이른다.
에코프로는 블루밸리 캠퍼스를 포함해 2027년까지 양극재 생산능력을 71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전기차 약 770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용량이다.
에코프로의 매출도 그새 급증했다. 에코프로 매출은 계열사 연결 기준으로 2017년 3290억원에서 2023년 7조25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에코프로가 최근 집중하는 분야는 전구체다. 전구체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따라 사업 분야를 조정했으나 다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배터리 업계에서는 핵심 광물의 내재화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를 통해 현재 전구체의 20~30%를 자급하고 있다. 4캠퍼스에 전구체 공장이 추가로 들어서면 이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3캠퍼스에서 연간 5만톤의 전구체를 생산하고 있다. 4캠퍼스가 준공되면 생산 능력은 11만톤으로 늘어난다. 2027년까지 생산 능력을 21만 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SK온, 중국의 거린메이(GEM)와 함께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서도 전구체 공장을 설립한다. 2025년 준공 예정인 이 공장에서는 연간 5만 톤의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다.
경북 포항 남구에 위치한 포항시청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부서가 있다. 배터리첨단산업과가 그것이다. 포항시가 얼마나 이차전지 산업 육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배터리첨단산업과 사무실에는 '포항시, 제철보국을 넘어 전지보국으로'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포항은 지난해 7월 정부로부터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받았다. 포항에는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등 이차전지 소재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두 선도 기업이 포항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2027년까지 7조원에 달한다. 두 기업을 포함해 지금까지 약정된 투자 금액은 14조원에 이른다.
포항시는 이를 기반으로 제철에 이어 이차전지를 차세대 먹거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 톤을 생산해 매출 70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포스코 매출(2022년 기준 35조1523억원)의 약 두배에 달하는 규모다. 1973년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을 생산한 지 50여년 만에 포항이 제철 도시에서 이차전지의 도시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차전지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도 현재 2000명에서 2030년 1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포항은 영일만 일반산업단지와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를 이차전지 특구로 키우고 있다. 두 단지를 합하면 297만평 규모에 이른다.
영일만 산업단지에는 에코프로(양극재), 포스코퓨처엠(양극재), 에너지머티리얼즈(GS건설 자회사, 리사이클)가 입주해 있으며 중국의 전구체 기업인 CNGR,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음극재)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영일만 산단 부지는 현재 모두 판매가 끝났으며 2025년에는 조성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루밸리 산업단지는 1, 2단계로 구분돼 조성될 예정이다. 1단계 부지는 현재 모두 판매가 완료됐으며 2단계 부지도 약 70% 가량 계약이 체결됐다.
블루밸리 산업단지에는 포스코퓨처엠(음극재), 미래세라텍, 피엠그로우, 뉴테크엘아이비, 에코프로가 들어섰거나 입주 예정이다. 포스코퓨처엠과 중국 화유코발트의 합작 공장과 중국의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인 진성새신에너지도 이곳에 입주할 예정이다.
경상북도가 도내 이차전지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도 블루밸리 산업단지 내에 있다. 2021년 10월 준공된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는 사용후 배터리 거점수거센터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영주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장은 "배터리 관련 중소 기업에 저렴한 가격에 사무실을 임대해 신제품 개발을 유도하는 한편, 실증을 위한 개방형 실험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항 이차전지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중 하나는 고급 인재 확보와 주거 안정이다. 이에 대해 서현준 배터리첨단산업과장은 "배터리 아카데미 남부권 인력 양성 사업을 운영해 포항에 있는 이차전지 관련 기업에 공급할 계획"이라며 "이차전지 특화단지 추진단을 구성해 애로사항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건설중인 컨벤션센터가 완공되면 이차전지 관련 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