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기자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기념사업을 확대하는 조례 제정이 추진되자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전쟁도시 인천'이라는 이미지만 각인될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천시의회는 시의원 8명이 공동 발의한 '인천시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 추진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다음 달 5일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조례안은 인천상륙작전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인천시가 교육·학술·문화·체육·관광사업과 참전용사 추모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시는 조례를 근거로 공공기관·민간단체와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을 공동 추진하거나 위탁할 수 있다. 또 인천시장이 인천상륙작전 정신 계승·발전 사업에 공로가 인정되는 단체·개인을 포상할 수 있으며, 유적지 발굴·보존, 기념시설 설치·관리 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이번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명규 시의원은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은 노르망디작전과 견줄 만한 가치가 있다"며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자유와 평화, 호국보훈 정신이 후세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시의회가 이처럼 조례 제정을 추진하게 된 데는, 유정복 시장이 구상한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유 시장은 지난 2022년 11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를 방문해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시설을 시찰한 뒤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75주년을 맞는 2025년에는 상륙작전 참가 8개국 정상과 참전용사들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로 개최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그동안 참전용사와 유가족 중심의 기념식과 몇 가지 추모식이 전부이던 것에서 프랑스 노르망디상륙작전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천지역 일부 시민단체는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인 상황에서 기념사업 대규모화는 남북·국제 관계에서 부정적인 영향으로 실익이 없다며 조례 제정에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인천본부 등 6개 시민단체는 29일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은 서해5도, 강화도 등 북과 접경지역에 있고, 최근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를 볼 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인천지역의 역할은 더 엄중하다"면서 "이럴 때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을 대규모로 추진하는 조례를 만들어 제도화하는 것이 인천시민을 위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국제적으로 '평화도시 인천'이라는 위상을 쌓으며 평화롭고 안전한 도시로 자리 잡았는데, 반복되는 인천상륙작전 대규모 기념행사로 '전쟁도시 인천'이라는 이미지와 불안한 도시로 각인될 것"이라며 조례 제정 추진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또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살던 120가구 600명 중 100여명이 숨지고 모든 마을이 불탔다"며 "인천시와 정부가 월미도 원주민들의 희생과 귀향 대책을 서로 떠넘기고 있는데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50년 9월 15일 한·미·영 등 8개국 261척의 함정이 투입된 인천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상륙작전으로 기록됐다. 당시 연합군은 북한군의 측면을 공격해 90일 만에 서울을 수복하는 등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