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석기자
여야가 올해 4월 총선 공천 작업에 한창인 가운데 ‘자객공천’이 화두로 떠올랐다. '자객공천'은 중량감 있는 거물 정치인이나 상징성 있는 정치인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맞춤형 맞상대를 내보내는 것을 뜻한다. 벌써 정당끼리 또는 정당 내 세력 간 공천을 앞두고 '자객공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16일 인천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의힘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출마하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가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어하는 후보들이 많이 있다"면서 "그중 한 분이 여기 계신다.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의 원희룡이다"라고 말했다. 원 전 장관이 이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다는 것이다. 이어 17일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서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고 한 비대위원장이 소개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국민의힘 입장에서 험지로 여겨졌던 곳이자 민주당 수뇌부 지역구에 ‘자객’을 내보낸 셈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천관리위원회가 가동되면서 공천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 비대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이 지역에서 그동안 총선을 준비해왔던 다른 후보자들에게는 불공정한 처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스템 공천을 망치는 길’, ‘한동훈식 전략공천’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공천이 위태로워진 지역위원장들은 반발하고 있다. 마포을 당협위원장을 맡은 김성동 전 의원은 그 자리에서 강하게 항의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한 비대위원장은 "모든 공천은 공관위의 룰을 따라야 한다"며 "(김 비대위원 출마를 소개한 것은) 당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 말한 것일 뿐 그걸 넘어 그분들(기존 당협위원장 등)에 대해 불이익을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공관위에서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해 놓고서, 한 비대위원장이 이렇게 하는 것은 시스템 공천인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공천이 이제 막 시작 단계이지만 자객공천이라는 단어는 정치권 곳곳에서 나온다. 일단 총선의 1차 허들인 공천의 문턱을 넘기 위해 저마다 ‘자객’을 자처한다. 민주당은 내부에서부터 말이 나온다.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이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심사를 잇달아 통과했기 때문이다.
김우영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와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검증위가 18일 당 홈페이지에 발표한 '12차 검증 심사 통과자 명단'에 포함됐다. 친명계인 두 사람은 각각 서울 은평을과 경기 안산 상록갑에 도전장을 냈다. 은평을은 비명(비이재명)계 재선 강병원 의원, 상록갑은 비명계 3선 전해철 의원이 현역 의원이다. 성희롱 발언 파문에 휘말린 현근택 변호사가 불출마를 선언한 경기 성남 중원에도 비명계 윤영찬 의원에 맞설 친명계 '자객'이 등장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상대 후보도 안 정해졌는데 무슨 자객공천이냐"며 "지금 단계에서 자객공천을 거론하는 것은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