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올해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서 인공지능(AI)과 더불어 중요한 화두는 친환경 산업이다. 탄소 중립을 향한 혁신을 이끄는 한국 스타트업은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이들의 혁신 뒤에는 현대차·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지원도 있었다.
1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유레카 파크(스타트업 전문 전시관)'에서 만난 코스모스랩은 물을 전해질로 쓴 이른바 '물 배터리(아연-브롬 이차전지)'를 전시했다. 코스모스랩은 현대차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ZER01NE)'의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이주혁 대표는 "코스모스랩의 물 배터리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희귀 광물을 사용하지 않아 저렴하다"며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는 발화점이 낮은 전해질 유기 용매를 활용해 불이 잘 붙었지만 발화점이 없는 물을 전해질로 사용해 화재나 폭발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자신했다. 흔한 광물인 아연과 브롬을 화합해 만들기 때문에 저렴한 데다 공급망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아연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브롬은 바닷물에서 추출한다. 리튬 등의 희귀광물보다 구하기 쉬운 편이어서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너지 밀도는 낮다. NCM822(니켈 8·코발트2·망간2 비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당 약 240Wh 수준인데 물 배터리는 ㎏당 100Wh 수준이다. 이 대표는 "아직 리튬 소재 배터리만큼의 에너지 밀도를 달성하지 못해서 전기차에 탑재되기는 어렵지만 ESS(에너지저장장치)나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에는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모스랩은 물 배터리 샘플을 삼성전자와 네이버 랩스 등에 공급했다. 친환경성도 갖췄다. 기존 배터리 전극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편이지만 물 배터리는 야자수 껍질 폐기물을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 현재 코스모스랩은 올 4분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CES 혁신상을 받은 에이엔폴리는 커피 찌꺼기(커피박)나 왕겨 등 유기성 폐자원을 활용해 나노셀룰로스라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플라스틱은 물론 배터리, 의료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신소재다. 에이엔폴리의 노상철 대표는 포스텍 환경공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이 소재를 만들었고 2017년 창업했다. 포스코의 스타트업 육성 센터인 '체인지업 그라운드'를 통해 지원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나노셀룰로스는 물성이 강하고 가벼울 뿐 아니라 독성이 없고 생분해가 가능하다. 석유를 원료로 하지 않고 유기성 폐자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인체에도 무해하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물과 이산화탄소가 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그랜드 뷰'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규모는 2016년 약 1조5000억원에서 2019년 10조원으로 급성장했고, 2027년에는 약 32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상철 에이엔폴리 대표는 "나노셀룰로스 시장은 플라스틱 대체를 넘어 바이오, 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 확장되는 추세"라며 "이번 CES혁신상 수상은 나노셀룰로스의 시장성과 더불어 회사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포브스 아시아의 100대 유망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회사측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노 대표는 "해외시장 진출 및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본격적인 협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미국 법인 설립을 완료한 상태"라며 "내년 상반기 내에는 경북 포항 기술융합산업지구에 신공장 설립을 통해 현재 대비 약 10배인 1000t 규모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