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안도 다다오의 사과와 괴테의 청년정신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산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안도 다다오-청춘展’을 열었다. ‘안도 다다오-청춘전’ 전시장 입구에는 7개월 동안 커다란 풋사과가 관람객을 맞았다. 보기만 해도 신맛이 잇새에 퍼져 진저리가 처질 것 같은 빛깔이다.

안도는 전시회 주제인 ‘청춘’을 익지 않은 사과로 상징했다. 풋사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다오의 서명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永遠の靑春へ’

안도 다다오

번역하면 ‘영원한 청춘에’가 되겠다. 현존하는 건축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안도는 왜 전시회를 열면서 주제를 ‘청춘’으로 정했을까. 전시회 개막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다다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만보씩 걷고, 한 끼 식사를 30분에 걸쳐서 합니다. 매일 책을 읽고 하루에 한 두시간씩은 반드시 공부하죠. 아, 그리고 저의 ‘푸른 사과’를 매일 만집니다. 청춘을 유지하며 살려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런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100세까지 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살려면 지적 체력도 필요하고 신체적 체력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희망이 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그를 거장이라 상찬하지만 안도는 자신의 건축 세계는 미완성(未完成)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완전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성의 상태가 청춘이라는 것이다.

화가들은 대체로 빨간 사과를 그리길 좋아한다. 국내 화가 중에도 커다란 사과를 그리는 화가가 있다. 뮤지엄산에서 풋사과를 보고 온 뒤로 나는 심심할 때마다 휴대폰에 저장된 안도의 초록 사과를 꺼내 보곤 한다.

지난해 원주 뮤지엄산에서 열렸던 안도 다다오 -청춘전 전시장 입구의 사과. [사진= 조성관 작가]

아득한 기억이지만 어린 시절 풋사과를 한 두 번 먹어보았다. 냇가에서 동무들과 물고기를 잡으며 놀다가 큰물에 떠내려가는 풋사과를 집어 한두 입 베어먹다가 버렸다. 풋사과는 대체로 큰비가 내리고 난 후에 냇물에 떠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풋사과는 신맛이다. 신맛 사이에 떫은맛도 난다. 그 맛에 몸이 진저리가 쳐진다. 익지 않았기에 아무런 맛이 없다. 아니 맛이 있고 없고 차원을 넘어선다. 초록 사과는 침을 돌게 하는 빛깔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잔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풋사과의 이미지를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아이작 뉴턴(1642~1727)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그랬다. 스티브 잡스가 아닌 아이작 뉴턴이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런던 극장가인 웨스트엔드에는 레스터광장이 있다. 레스터광장의 작은 공원을 에워싸고 세상을 바꾼 영국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 동상들은 영국이 배출한 세계사를 바꾼 인물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이 뉴턴이었다.

1689년의 아이작 뉴턴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뉴턴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이 지구별에 다녀갔던가. 온대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최소 한 두 번씩은 사과를 콱 씹어 우걱우걱 씹어 먹어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또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도 보았으리라.

뉴턴만이 왜 사과가 떨어지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뉴턴만이 떨어지는 사과에 물음표를 가졌다.

왜 떨어지지?

왜 가지에 매달려 있지 않고 떨어질까?

사람은 살면서 한순간도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을 때가 없다.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도, 나이가 들어 눈두덩이가 처지는 것도, 밥을 먹다가 밥알을 흘리는 것도 모두가 중력 때문이다. 보톡스 필러 시술은 중력 법칙에 대한 인간의 저항이다. 중력이 없었으면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인간이 되지 못한다.

지구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현재까지) 우주의 유일 행성이다. 뉴턴의 중력이 없었으면, 아니 뉴턴 같은 사람이 늦게 나왔더라면 세상에 대한 인류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프랑스 화가이자 작가인 모리스 드니(1870~1943). 드니는 19세기 인상파에서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이행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작가로서 그는 큐비즘과 추상미술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드니는 평론집 ‘이론’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가 인류 역사를 바꿨다.”

이브의 사과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폴 세잔(1839~1906)의 ‘사과’가 도대체 어쨌길래. 정확히 말하면 폴 세잔의 ‘병과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1904)'이다.

'병과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사진= 시키고미술대학 소장]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은 세 가지 법칙의 지배를 받았다. 이 세 가지 법칙이 2000년 이상 서양 회화를 구속했다. 첫째는 대상, 오브제를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수학적 원근법을 적용하여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창출하고, 셋째는 명암으로 피사체의 부피감을 만든다는 것이다. ‘병과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찬찬히 뜯어보자. 원근법이 철저하게 무시된다.

미술사의 획을 그으며 새로운 장르를 만든 아티스트들은 모두 서양미술을 구속해온 고정관념에 도전한 사람들이었다. ‘입체파’를 이끈 파블로 피카소나 ‘야수파’를 리드한 앙리 마티스가 모두 서양미술의 공식에 반역적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다. “폴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언급한 피카소의 말이 모든 걸 함축한다.

폴 세잔은 소설가 에밀 졸라의 죽마고우다. 두 사람의 관계를 조명한 영화도 나왔다. 세잔은 작품을 인정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칫 살아생전에 평가를 받지 못할 뻔했다. 기성 화풍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는 태도, 자신과 세상에 고분고분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세잔의 예술 철학이었다.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거꾸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바젤리츠가 숭앙하는 예술가는 일본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다. 바젤리츠는 스스로를 호쿠사이처럼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호쿠사이는 늦은 나이까지도 자신의 작업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좀처럼 만족하지 못했기에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고, 또 시작하기를 반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안도로 돌아간다. 안도 하면, 누구할 것 없이 노출 콘크리트를 연상한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안도의 노출 콘크리트를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 왜 마감을 하다 말았지?”

안도는, 도대체 왜 마무리를 하다 만 것 같은 노출 콘크리트를 시도했을까. 일본의 전통미학 와비사비(侘び寂び)를 현대건축에 결합시킨 것이다. 꾸미지 않은 순수함을 강조하며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 개념이 와비사비다. 교토의 료안지(龍安寺)나 긴가쿠지(銀閣寺)를 설명하면서 일본 가이드가 종종 쓰는 표현이다.

교토의 료안지의 정원 가레산스이. [사진= 조성관 작가]

프라하의 소설가 카프카가 숭앙하며 사숙한 작가가 바이마르의 괴테다. 카프카는 괴테에 두 손을 들었다.

“내가 어렵게 깨달은 것을 이미 괴테는 다 말했다.”

괴테는 말 그대로 주옥같은 어록을 많이 남겼다. 그중 안도의 사과론(論)과 비슷한 말은 이것이다.

“무언가 큰일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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