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플랫폼 규제 '유럽과 다르다'는 공정위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유럽 디지털시장법(DMA)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유럽연합(EU)의 플랫폼 제재 법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행히 최종명단에선 빠졌고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달 초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삼성 등 한국 기업들과 만나 규제에 공동 대응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랬던 공정위가 EU 규제를 꼭 닮은 ‘한국판 DMA법’ 제정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일 국무회의에 플랫폼 경쟁촉진법 도입 관련 내용을 비공식 토의 안건으로 상정한 것이다.

이 법의 골자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에 사전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사업 임시중지명령을 도입하거나 공정거래법과 비교해 과징금을 상향한다. 법이 시행되면 네이버·카카오·쿠팡을 비롯해 구글·애플·메타 등 글로벌 기업까지 사정권에 포함된다.

공정위는 국내의 플랫폼 사업자 사전규제가 유럽 DMA법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폭넓은 제재를 가하는 DMA 법과 달리 최소한의 룰만 적용하는 만큼 규제범위가 좁다는 것이다. 또 한 위원장의 유럽 현지 발언은 우리 기업들이 DMA 법을 피하도록 도와주는 게 아니라 차별적 조치가 없는지 살피겠다는 뜻으로 법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에선 결과적으로 유럽 DMA와 다를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여전하다. 사전규제를 하겠다는 측면에서 마찬가지로 고강도 규제라는 것이다.

사전규제는 사후규제와 한 글자 차이지만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천지 차다. 위법 행위 입증 책임이 기업에 있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게다가 플랫폼 독과점 행위는 현행법으로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 공정위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구글·애플 등에 과징금을 부과한 전례가 있다. 사전규제법이 시행되면 기업의 부담만 키울 뿐이다.

‘카카오 사태’로 불거진 플랫폼 업계의 신뢰는 정부와 기업이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다. 그렇다고 개별 기업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모든 플랫폼 기업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규제 만능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산업IT부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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