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샤일록의 변명

1492년 스페인에서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일들이 생긴다. 이 해에 최초로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라 여왕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콜럼버스로 하여금 신대륙을 발견케 하여 대항해시대를 연다. 많은 것을 이루자 이에 고무된 여왕은 같은 해에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유대인을 추방하는 ‘알람브라 칙령’을 내린다. 당시 스페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게 종교를 가톨릭으로 바꾸거나, 스페인에서 떠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추방되었다.

서민경제는 곤두박질쳤다. 탐욕스러운 유대 금융인들이 사라진 것이 왜 자신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서민들의 생계는 막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 왕국 스페인은 콩알만 한 네덜란드에 세계 패권을 빼앗겼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쫓겨났던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방랑을 마치고 정착한 곳이었다. 유대인들의 금융기법으로 최초로 탄생한 주식회사나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네덜란드의 서민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다. 서민들 돈이 ‘튤립 투기 열풍’을 만들 정도였다.

중세시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밀라노, 제노바, 베니스, 피렌체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특징이자 공통점은 유대인들과 메디치 가문 등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이 번성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상업이나 무역 자금을 융통해주는 금융인들에게 돌아오는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예를 들어 당시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의 경우, 법으로 유대인들을 ‘게토’라 불리는 지역에서만 살도록 하고 감시했으며 대낮에 ‘게토’를 이탈하는 유대인들은 빨간 모자를 써서 자신들의 신분을 밝혀야만 했다고 한다. 탐욕스럽고 사악한 금융업자의 대명사 샤일록도 그런 대우를 받아야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금융업자에 대한 시선이 따갑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다소 의아한 표현도 나왔고 은행의 이익이 마치 일확천금인 것처럼 ‘횡재세’를 걷겠다는 다소 위법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서민들 살기가 이렇게 팍팍한데 이들의 이윤은 갈수록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스페인과 베니스에서의 금융업자들에 대한 반감이 이런 거였을까?

한데 회계장부를 살펴보면 은행들의 순자산 대비 이익(ROE)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무슨 횡재라 하기에 갑자기 수익이 폭증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과 다르다. KB금융의 과거 10년간(2013~2022년) ROE 평균은 8% 내외 수준에 불과하여 15% 내외의 삼성전자에 비하면 상당히 낮다. 올해에도 9% 내외의 ROE가 예상되는 정도일 뿐이다.

금융업은 고용을 많이 창출하고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하는 핵심 산업이다. 선진국일수록 더 그렇다. 만약 금융사 이익 규모가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한다면 공평하게 법인세율을 올리는 방법을 택하자. 만약 금융업의 이익으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싶다면 ‘금융주 장기보유자 배당세 면제’ 등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골고루 금융주를 보유하도록 유도하자. 금융업 성장으로 우리나라 재도약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항상 하는 필자에게 최근의 상황은 마치 ‘알람브라 칙령’처럼 느껴진다.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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