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정여울의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5>

편집자주<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속 5관 '신과 인간, 그리고 해방의 미술관'의 작품들은 뜨겁고 강렬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뤘다.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와 <메두사>에서는 괴물이 돼서라도 고통스러운 현실과 싸우고 싶은 예술가의 원초적인 욕망을 읽어낸다. 끝없는 악몽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용기를 낼 것을 응원하는 퓌슬리, 예술가 정신의 영원한 롤 모델인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그린 워터하우스, 관습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시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린 달리 등 신화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담은 화가들의 작품과 그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글자 수 1046자.

심층심리학에 따르면 어떤 꿈도 ‘개꿈’은 아니다. 모든 꿈은 꿈꾸는 자의 인생 속에서 예언적 기능을 지닐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할 뿐이다. 심층심리학에서는 꿈속에서 나오는 모든 이미지를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의 발현’으로 본다. 즉 꿈속에서 타인이 등장하더라도 그 타인은 실제로 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투사(projection)’라는 것이다. 꿈속의 괴물이 무서운 이유는 그 괴물의 정체가 ‘내 안에 있다’는 직감 때문이다.

퓌슬리의 <악몽> 속에서 악몽의 주체는 침대 위에 널브러진 여인이지만, 그녀를 누르고 있는 저 원숭이를 닮은 괴물 또한 ‘그녀 안의 또 다른 그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내 안의 괴물이다. 그 괴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너는 절대로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없을 거야’라고 위협하는 괴물, ‘너는 결코 그 사람을 이길 수 없어’라고 속삭이는 괴물, ‘그 사람을 아무리 원해도 결코 만날 수 없을 거야’라고 겁을 주는 괴물. 우리 안에는 스스로의 행복을 가로막는 수많은 괴물이 있다.

그 괴물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시끄러워도 알고 보면 매우 명쾌하게 요약된다. ‘너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거야.’ 이 내면의 괴물이야말로 우리가 꿈속에서도 싸워야 할 진짜 두려움의 정체가 아닐까. 퓌슬리의 그림 속 여인은 지금 괴물과의 싸움에서 백기 투항하고 있다. 괴물에게 완전히 짓눌려버렸다. 이런 끔찍한 가위눌림을 경험했다면, 그 꿈의 신호는 바로 ‘어서 빨리 일어나 저 괴물과 맞서 싸우라’는 무의식의 절박한 외침이 아닐까.

(중략)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 <악몽>, 1781년, 디트로이트 미술관

당신 곁에 지금 어떤 괴물도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삶이라는 링 위에 데뷔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 곁에 너무도 많은 괴물이 들끓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제대로 된 삶의 전쟁터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매일 괴물과 싸우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매일 수많은 괴물과 싸우는 당신,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는 당신, 그대가 바로 진정한 영웅이다.

-정여울,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웅진지식하우스, 1만9000원

산업IT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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