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정여울의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3>

편집자주알랭 드 보통은 “예술의 의외로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 치유 기능이다. 그림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삶의 이야기를 투영하는 동시에 모든 고락을 아름다운 빛과 색채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다. 작가 정여울은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미술관에 오면 일희일비하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삶의 빛과 그림자를 더 또렷이 바라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의 3관 ‘빛의 언어로 그려낸 세상 모든 풍경들’에서는 클로드 모네, 조르주 쇠라, 에드바르 뭉크,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워드 호퍼, 잭슨 폴록, 카라바조에 이르기까지 풍경과 정물을 그린 화가들의 다채로운 빛의 언어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글자 수 832자.

뭉크의 <이별>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무화(無化)해버리는 한 인간의 압도적 슬픔을 그려낸다. 서로 헤어지는 두 사람이 주변의 풍경 전체를 삼켜버리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여인은 남자의 아픔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매정하게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남자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상처를 곱씹으며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남자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른다. 이별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어버린 듯하다. 남자는 흘러나오는 피를 막으려는 듯 애써 가슴을 손으로 가려보지만,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없다. 그는 어떻게든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피만큼이나 검붉은 색채를 띤 거대한 식물이 그의 앞을 꼿꼿이 가로막고 있다. 그는 이별의 상처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이별>, 1896년, 뭉크 미술관

반면 화면을 벗어나려 하는 여인은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그녀의 드레스는 마치 천사의 날개 자락이라도 되는 듯이 가볍게 펄럭인다. 그녀에게는 이별이 해방이자 자유다. 이별의 칼날을 남자의 심장에 꽂아 넣자 그녀는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진 것 같다. 고통스러운 사랑으로 인한 상처로 여성혐오증까지 앓았다는 뭉크의 비관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남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여자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는 듯 보인다. 한때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이 장소는 남자가 흘린 피로 곧 검붉게 물들어버릴 것만 같다. 때로는 인간의 고통이 자연을 삼켜버릴 듯 크고 깊고 치명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떤 슬픔은 주변의 환경마저 고통과 우울의 색채로 물들인다.

-정여울,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웅진지식하우스, 1만9000원

산업IT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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