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약을 팔기 위해 영혼도 파는 사람들

의사 늘어나면 시장도 커져
의약계 카르텔 막을 제도 강화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영업 현장은 전쟁터다. 특히 제약회사 영업은 무척 치열한 전장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중에 의약계 종사자가 여럿 있어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에피소드를 여럿 전해 듣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미국 제약업계는 우리나라보다 더 심해 보인다. 오늘은 공개된 지 한 달도 안 되는 따끈한 신작 영화 ‘페인 허슬러’를 소개한다.

배우 에밀리 블런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주연까지 맡았다.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번스도 나온다. 줄거리는 그다지 새롭지 않고 중반 이후 급격하게 교훈적인 태도로 급변하는 톤도 아쉽다. 내 별점은 5개 만점에 2개 반.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오늘 소재로 삼은 이유는 마약성 진통제의 폐해가 극에 달한 요즘 시의적절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작품으로 ‘페인 킬러(pain killer)’ ‘돕식(dope sick)’ 등등 여럿이 있었지만, 최소 대여섯 회차 이상을 봐야 하는 시리즈였다. ‘페인 허슬러’는 영화 한 편에 이야기를 다 몰아넣었다. 이 영화에 묘사된 의약계 카르텔은 이런 식이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성 진통제 신제품이 출시된다. 제약회사는 영업사원들을 병원으로 보낸다. 처방전에 자기 회사 신약을 넣기 위해서다. 최초 처방을 따내면 수천만 원의 수당을 주겠다는 전리품까지 내건다. 영업사원들은 의사의 처방전을 따내기 위해 현란한 말솜씨, 뇌물, 파티, 성 상납 등등 저마다의 무기로 경쟁사 영업사원들과 싸운다. 일부 의사들은 각종 특혜를 누리고 처방을 늘려준다. 대가도 커지므로 처방전을 남발하는 의사들도 생긴다. 이런 식으로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제약회사로서는 수익도 커지고 회사 주가도 상승하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진통제 시장의 규모는 무려 100조원 대. 탐욕의 카르텔이 유지되기 위해선 그만큼의 희생이 필요하므로 누군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는 거다.

희생은 의료보험을 내는 국민과 진통제를 먹는 환자들의 몫이다. 돈만 뺏겨도 억울한데 약에 중독돼 건강마저 위협당한다. 미국의 경우 성인 사망원인 1위가 펜타닐이다. 오피오이드라고 통칭하는 마약성 진통제의 총합이 아니라, 펜타닐 한 종류만으로도 암이나 교통사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원래 펜타닐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말기 암 환자 같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약인데 이제 암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이쯤 되면 페인 킬러(pain killer·진통제)가 아니라 그냥 킬러가 아닐까? 게다가 오남용을 막기 위한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정작 이런 약이 꼭 필요한 환자들마저 처방받기 까다로워진 부작용도 생겼다.

미국만의 이야기일 리가 없다. 펜타닐만 문제일 리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이제 의사 숫자가 대폭 늘어날 예정인데, 제약회사로서는 시장이 커지고 로비 대상도 늘어나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과잉 진료, 과잉 처방을 막는 제도를 미리 강화해둬야 한다. 의약계의 부적절한 관행을 근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대다수 의사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양심에 따라 환자를 돌보겠지만, 어떤 집단이든 구성원의 전체 숫자가 늘어나면 부적격자들의 숫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페인 허슬러’를 재미있게 봤다면 ‘돕식(dope sick)’을 추천한다. 넉넉한 분량의 8부작 시리즈인 만큼 인물도, 이야기도 더 풍부하고 흡인력도 훨씬 강력해서 내 별점은 5개 만점에 4개. 전자가 타이레놀이라면 후자는 펜타닐.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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