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주기자
반도체의 봄이 돌아오고 있다. 하반기 들어 반도체 핵심 수요처인 스마트폰과 PC 수요가 살아나면서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는 중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길었던 반도체 겨울을 지나고 실적 보릿고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다.
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과 금융투자업계에선 HBM과 같은 고부가 제품 외에 D램 등 메모리 수요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메모리 시장이 업턴으로 돌아서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요 회복 신호가 감지되면서다.
실제 스마트폰 시장 업황이 회복 국면으로 돌아서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약 3억대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정체 수준을 보이며 비교적 선방했다고 밝혔다. 지난 2분기 7.9% 감소하는 등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최근 9개 분기 연속 역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신호다. 모바일칩 시장을 대표하는 퀄컴의 호실적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퀄컴의 올해 3분기(회사 자체 기준 4분기) 매출은 86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지만, 시장 예상치(85억1000달러)를 상회하는 실적을 냈다.
PC 시장 또한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PC용 CPU(중앙처리장치) 1위 업체인 인텔은 올해 4분기 매출이 시장 전망치(143억달러)를 웃도는 156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카운터포인터리서치 역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PC 업계의 출하량이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년 넘게 하락세를 이어가던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본격적인 반등을 시작했다. 트렌드포스는 PC용 D램(DDR4 8Gb) 범용 제품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이 10월 기준 1.5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3달러에서 한 달 만에 15.38%가 뛴 셈이다. 최첨단 D램 규격인 DDR5 제품 등 10개 품목의 고정거래 가격도 전월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 종류인 낸드플래시 고정거래 가격 역시 올랐다. 128Gb 멀티레벨셀(MLC) 낸드플래시의 이달 고정거래 가격은 3.88달러로 27개월간 이어진 하락세를 뚫고 전월 대비 1.59% 상승했다.
메모리 시장의 업황 가늠자로 통하는 세계 반도체업계 3위인 마이크론의 실적도 고무적이다. 마이크론은 최근 2023 회계연도 기준 4분기(6~8월) 영업적자 14억7200만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영업손실 23억300만달러, 3분기 영업손실 17억6100만달러와 비교하면 적자가 크게 줄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D램 사업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실적 회복에 돌입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전히 메모리 업계의 재고 부담이 크고, 감산 지속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내년 메모리 업황에 대한 회복 전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재고가 5월 피크아웃을 보인 뒤 빠른 수준으로 감소 중이고, 4분기에 더욱 빠른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업황회복과 함께 메모리 가격 상승 여력도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관측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메모리 반도체의 감산 효과가 하반기 들어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나타나면서, 주요 제품의 가격이 안정화되고 있다"며 "내년 수요 환경은 거시경제 환경에 영향은 받겠지만, 최소한 지난 2년간의 조정기에서 벗어나 전 응용처에서 세트 출하량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