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선기자
2019년 이맘때쯤, 선배의 권유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란 책을 읽었다. 치매 어르신을 직원으로 꾸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실제 프로젝트를 그려낸 책이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좌석 12개짜리 작은 공간에 레스토랑의 직원은 모두 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메뉴는 3가지, 가격은 모두 1000엔. 어르신 중에는 주문을 받으러 왔다가 "내가 여기 뭐 하러 왔지?" 하고 멍하니 서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르신은 손님이 "주문받으러 오신 거 아니세요?"라고 물으면 "호호호" 웃으며 주문을 받는다. 주문한 음식과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어르신들의 예상 밖 실수에도 화를 내는 손님은 아무도 없다. 실수를 오히려 즐기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국민 600만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다. 일본은 올해부터 치매 당사자의 사회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한다. 지난 6월14일 일본 의회는 ‘공생사회실현을 추진하기 위한 인지증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앞서 일본은 2004년 ‘치매’라는 병명을 인지증으로 바꿨다. ‘치매’라는 병명 자체가 사람들에게 편견을 만들기 때문이다. 치매라는 말은 ‘정신이상(Dementia)’이라는 라틴어 의학 용어 어원을 반영해 ‘치매(어리석다)’라는 한자어로 옮긴 것이다.
2년 뒤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가 되는 내년에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2050년엔 치매 환자가 300만명을 넘길 것이라고 추정한다. 치매 환자 1명을 돌보는 데 국가 지원을 제외한 개인 부담만 일 년에 2061만원이 든다.
원래 환자가 살던 지역에서 잔존 능력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치매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부터 시행한 치매안심마을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현재 치매안심마을은 전국에 600개가 넘는다. 약사, 집배원 등 이 마을 구성원은 치매 환자와 가족을 배려하는 따뜻한 동반자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을 위해 ‘초록기억카페’도 운영한다. 치매 환자들이 직접 카페 운영을 하며 일상 활동 수행 능력을 키우고,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소 늦었지만 정부는 ‘치매’ 병명도 바꾸려고 준비 중이다. 인지증, 인지병, 인지 저하증 등의 병명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 구성원들의 치매에 대한 인식, 치매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다. 치매의 한 보호자는 "치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빠서 남편과 숨어지냈다"면서 "다 내려놓을까란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치매 환자에게 고립은 독이다. 이 보호자는 "이웃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고,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치매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미래다. 치매 가족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치매 안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