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지서 동기 폭행 군인 '해외주둔지는 군사기지 아냐' 억지[서초동 법썰]

7살 어린 軍동기 지속적으로 폭행 후 합의
"해외파병지는 군형법상 군사기지 아니다"며
"'반의사불벌죄' 규정 적용돼야" 주장
法 "해외기지도 군형법상 군사기지"

2019년 입대한 일병 이모씨(27)와 A씨(20)는 같은 부대에서 동기로 만났다. 나이가 7살이나 더 많은 이씨는 A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씨는 '팔짱을 끼고 TV를 본다' '앉아서 TV를 가린다' '대답을 제대로 안 한다'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A씨의 복부와 팔뚝을 주먹으로 여러 차례 때리거나 목을 졸랐다. 폭행은 이들이 아프리카 남수단 재건지원단 보르기지(한빛부대)로 함께 파병 갔을 때도 계속됐다. 한빛부대는 유엔(UN)의 요청에 따라 2013년부터 파견된 300여명 규모의 공병 중심 부대다.

A씨의 고통을 바라만 볼 수 없던 동료들이 이씨를 신고해준 덕분에, 이씨는 형사 재판을 받게 됐다. 1심은 군사법원에서 진행됐고, 이씨는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군 판사는 "군 내 폭력 범죄는 군 전체의 사기와 전투력을 떨어뜨려 군 기강을 문란하게 한다. 피고인은 동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피해자를 지속해서 괴롭히고 폭행했다"며 "타국에서 해외 파병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도 폭행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단순한 장난일 뿐 실제 폭행이 아니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재판 과정에서 이씨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군형법 관련 규정상 '군사기지'에서 군인을 폭행하면 처벌돼야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군사기지에 '해외 파병지'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반 형법상 폭행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고, 해외 파병지인 한빛부대는 군사기지가 아니므로 군형법이 아닌 일반 형법이 적용돼 자신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이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관련 법상 군사기지란 그것이 국내외 어디에 있든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기지'를 의미한다"며 "한빛부대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파견된 대한민국 국군부대가 임무 지역에 주둔하기 위해 마련된 근거지이며, 대한민국 예산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대한민국 국군 장병에 의해 관리된다. 이를 군사기지로 볼 수 없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근거지가 대한민국 영토 밖에 있다고 해도, 엄격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장기간의 병영생활이 요구되는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장소란 점에서 이는 다른 대한민국의 국군 군사기지와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이 옳다고 봤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최근 "2심 판단에 군형법상 군사기지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이씨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사회부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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